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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1.03.04
제 목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본 문 :마태복음 6:28~24
이스라엘의 수상을 지냈던 매나헴 베긴 수상이 재임시에 어떤 때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께서 그를 후하게 환대해서 맞이했습니다. 그 환대를 받으며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방에 들어서면서 첫눈에 뜨인 것은 그 커다란 테이블 한가운데에 있는 세 개의 전화였습니다. 세 대의 전화를 보니까 하나는 백금으로 만든 것 같은 하얀 전화기이고, 또 하나는 빨간 전화기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금으로 만든 것 같이 누런 황금빛의 전화가 있더랍니다. 이 베긴 수상이 속이 좀 뒤틀려서 빈정대는 말로 물어보았습니다. “이 전화기 세 대는 무엇에 쓰는 거요?” 하고 물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아주 어깨에 힘을 주고 대답을 했습니다. “흰색은 행정부로 통하는 것이고 주로 공무에 대해서 쓰는 전화이고, 이 빨간색을 구소련과 직결되어있는 비상전화이고, 황금색으로 된 것은 하나님과 통화하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베긴 수상이 “그러면 하나 물어봅시다. 하나님과 통화할 때 통화료가 얼마요?” 레이건 이 빙그레 웃으면서 “만 달러요. 그거 만 달러 가치가 있는 겁니다” 그랬더랍니다. 얼마 후에 레이건 수상이 이스라엘을 방문하게 되고 베긴 수상의 집무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 역시 전화가 세 대가 있거든요. 또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이 전화기는 어디에 쓰는 거요?” “이 백색 전화는 국회의사당하고 연결된 걸로 공무로 사용하고, 요 가운데 있는 요 빨간 거는 이집트하고 연결된 비상전화요. 이 노란 것은 하나님과 통화하는 것이요” 하고 얘기했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또 한마디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통화할 때 통화료가 얼마요?” 했더니 베긴 수상이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이 “여기는 십오센트입니다.” “거 왜 그렇게 싸요?” 이제 베긴 수상이 중요한 대답을 합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과 통화할 때 이곳은 하나님의 나라의 지방도시이기 때문에 국내 전화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하나님의 선민이요. 선민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건 하나님의 도시이니까 국내 통화로 된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 우리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의 지방도시입니다. 그 신앙고백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듣게 됩니다. 매우 귀중한 말씀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 하는 말은 ‘바실리아 카이 디카이로쑤네’, Kingdom입니다. 왕국. 그리고 ‘그의 의’ 여기서 생각할 것은 ‘그 의’ 가 아닙니다. ‘그의 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이것을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 타오타 판타, 모든 것, 뭐든지, 다 이루어 주실 거라고 이렇게 주님께서 확실하게 말씀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생각합니다. 무엇을 입을까? 이 모든 이야기는 통틀어서 경제 문제입니다. 우리는 경제문제에 시달립니다. 염려 걱정, 염려 걱정, 그리고 서로 싸우고 물어뜯고. 어찌 생각하면 이 모든 문제가 경제 문제요. 돈 문제 때문이다, 그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시는 데로 이 경제 문제란 정치문제입니다. 일본사람이 우리 한국에 와서 수십년 동안을 한국에서 살고 직장생활을 하고 사업을 하고 그리고 한국사람에 대해서 한국에 대하여 글을 썼습니다. 그의 책에 보면 한국 사람의 좋은 점 나쁜 점 다 썼어요. 특별히 고마운 것은 일본사람하고 비교해서 한국사람이 좋다, 한국 나라가 좋다, 이런 이야기를 쫙 써나가다가 마지막 결론이 이렇습니다. ‘정치만 조금 잘해주면 잘살 수 있는 나라인데……’ 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사실입니다. 우리 백성들 참 좋아요. 좀 무슨 언짢은 거 있다가도 또 건망증이 많아서 또 쉽게 잊어버리더라구요. 우리 민족, 참 창의력도 있고 머리도 좋고 부지런하기도 하고 다 좋은데 이 민족을 인도하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잘해주면 좋겠는데 이걸 못한단 말이에요. 그래 이 모양이에요.
자, 이제 다시 생각합시다. 그럼 정치하는 사람들이 왜 정치를 못할까? 그것은 그들의 양심 문제예요. 양심을 팔아먹었어요. 양심이 병들었어요. 기술이 없는 게 아니에요. 몰라서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마음이 틀려먹었어요. 양심에 문제가 있어요. 그러면 양심은 다시 도덕적 문제입니다. 그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요. 잘하겠다는 마음도 있고, 큰 일을 이루어 보겠다는 야심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도덕성을 잃어버렸어요. 여기서 빗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도덕성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종교입니다. 전 늘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아침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이 나라를 다스려야 되겠는데, 그래야 도덕성이 삽니다. 바른 종교 없는 도덕성 없습니다. 바른 신앙이 없이 도덕성이 바로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덕성은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의 열매여야만 합니다. 또한 바른 종교는 신학적 문제입니다. 바른 신학적 고백과 그의 교리와 그의 신앙이 모든 문제의 근본이 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때 자본을 얘기했습니다. 지식도 얘기했고 기술, 자본, 지식, 기술, 자본, 지식, 기술, 이것만 있으면 될 거라고 그래서 자녀들을 가르치느라고 애썼고 기술을 습득하느라고 몸부림을 쳤습니다만은 이제는 그게 아니에요. 경영문제에 부딪혔어요. 경영문제는 도덕적인 문제요. 그런고로 진실성에 문제가 있고, 정직함에 문제가 있어요. 단적으로 말하면 조금만 더 정직해도 이 나라 경제정치가 바로 될텐데 가장 소중한 정직함을 잃어버렸단 말입니다. 이제 그의 나라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의 나라, 그 왕권,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요. 우리 나라는 그 나라의 한 지방도시일 뿐이요. 큰 나라 개념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하나님이 역사의 주가 되셔서 이 땅을 다스려 가고 있는 겁니다. 그 나라에 대한 개념 그 신앙고백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는 세계 그 절대주권을 바로 알고 그 주권 앞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세무 사찰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주권을 무서워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 되야 된다는 말입니다.
역사가, 유명한 토인비는 “미래를 산다” 라고 하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역사 연구 끝에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의 죄가 없던 때가 없다. 죄가 없는 나라, 죄가 없는 민족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죄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죄가 반복되면 안 된다. 그럼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뻔히 알면서도 죄가 되풀이될까? 왜 반복되고 계속 죄악에서 헤어나질 못할까? 그것은 그는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역사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태도가 없기 때문이다. 책임. 이 나라 경제, 정치, 모든 문제에서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책임을 인정해야 되고 책임을 질줄 알아야 되요. 그런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합니다. 책임, 부정해 버리고 맙니다. 그 어느 것도 책임을 밝혀본 일이 없습니다. 밝혀지지도 않습니다. 바로 책임소재가 분명치 아니하므로 죄는 시정되지 않는다 하는 것이구요.
또 하나는 집단행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라.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집단행동은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집단행동은 그대로 ‘의’라고 착각을 할 때가 있어요. 많은 사람이 주장한다고 옳은 게 아니에요. 집단행동화 됐다고 해서 그게 선으로 지향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악이 집단화될 때 그 악 자체가 정당화되면서 합리화되고 문제라고요. 힘을, 집단화되는 힘을 정의의 기초로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멸망의 징조라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궁극적 원인은 자기중심이라는 것이에요. 내 생각, 내 주의, 내 철학, 내 지식, 자기 중심, 그리고 나를 위하는 생각, 내 명예, 내 장래, 내 욕심, 이것 때문에 망조가 드는 거예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해야 되요. 그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되는 거예요. 이 객관적인 의를 수용해야 된다는 말씀이죠. 그래 오늘 성경말씀에는 예수님 다시 말씀합니다. 그의 의를 구하라. 의, 그의 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뜻, 이것은 앞세워야 한다는 말이죠.
유명한 인도의 간디의 “망국론”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일곱 가지, 이 사회와 나라를 아주 망치는 일곱가지 악이 있다. 너무나 유명한 얘기입니다. 첫째, 일하지 않고 얻는 재산. 재산이란 일하고 얻어야 됩니다. 땀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먹고 살수 있는 사회는 망합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공짜로 버는 걸 좋아하는, 공짜로 출세하는 줄 아는, 그런 세계는 망하는 것이에요. 복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만은 복권 당첨돼서 잘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정도 개인도 다 망합니다. 이 복권은 죄입니다. 국민을 사행심으로 끌어가 가지고 카지노 판을 만들려고 하는 게 이게 바로 망조입니다. 일하지 않고 공짜로…… 누가 그 슬롯머신에다가 1불 짜리 하나 넣고서 “주여!” 하고 잡아당겼답니다. 안 나오더랍니다. 이런 망조예요 이거는. 일하지 않고 돈을 모으려고 하는 생각, 그 자체가 악이요.
또 하나는 양심이 결여된 쾌락, 쾌락에 죄가 있는 게 아니에요. 양심이 없는 거예요. 사방에 굶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쾌락하고,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즐기는 거예요. 그것도 정신적 쾌락이 아니라 저속한 쾌락, 거기에 망조가 있는 것이죠. 양심이 없는 쾌락.
성품이 결여된 지식. 지식이란, 그 깨달은 지식대로 행하고, 행위가 반복되며 습관이 되고, 그것이 문화화 되면서 성품화 되는 거예요. 모든 바른 지식이란 생활화되고 성품화 되어야 하는데 말만 많아요.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하는 거예요. 이렇게 성품화되지 못한 지식이 사회를 망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도덕성 없는 사업, 사실 문제지요. 더구나 불량식품 같은 것. 식품을 만들었어요. 내가 먹어야지요. 약을 만들었어요. 내가 먼저 먹을 수 있는 약이래야지요. 여러분 이 도덕성이 없는 사업, 남이야 죽던 말던 오로지 자기만 이롭게 하겠다고 하는 이 생각, 이런 사업이 망조예요. 또 하나는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 요사이 우리는 전에 못 듣던 말을 많이 듣습니다. 광우병이라고요, 구제역이라고요. 이게 다 무슨 소리입니까?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적 지식이 마침내 세상을 이렇게 혼란하게 만들어요. 그 똑똑한 구라파 사람들이 지금 벌벌 떨게 됐대요. 과학적 지식을 자랑하더니 선진국, 선진국 좋아하누만. 죽었어요 이제는요. 자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까? 채소를 먹을 수 있습니까? 물을 마실 수 있습니까?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적 지식이 오늘 우리 인류를 망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희생과 말씀에 대한 헌신이 없는 종교. 신앙을 운운하면서 행함이 없어요. 헌신이 없는 종교, 이것 또한 문제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원칙이 없는 정치, 우리 국민이 무엇 때문에 지금 벌벌 떨고 있습니까? 원칙이 없어요. 휘청휘청해요. 그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요. 원칙이 없는 정치, 이것이 모든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이에요. 그 원칙이 뭐겠습니까? 그의 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진리, 그것이 원칙이 될 때 비로소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죠. 예수님 말씀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먼저’라는 말은, ‘포토스’라는 말은 ‘첫째’라는 말입니다, First.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됩니다. 공산주의의 정책 순위는 평등·번영·자유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혹은 자유 진영에 있어서는 자유·번영·평등입니다. 그러나 성서적 복음주의에는 정의가 최우선적입니다. 그런고로 정의·자유·평등입니다.
이것을 이루게 될 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타오타 판타’ 모든 것이, 먹는 거 입는 거,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고요. 하나님의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14장 34절에 보면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죄는 나라를 욕되게 하고 망하게 합니다. 의,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루어질 때, 또 우리 모두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때, 절대적 우선으로 구할 때, Priority number one으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919년 평안남도 그 어느 지방에 일본 헌병대에 4월자 일지에 기록되어 있는 문서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3.1 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무라까미 헌병소장은 다나까 부하에게 나가서 3.1운동 만세를 부른 사람들, 그 주동자들을 체포해오라고 했습니다. 다나까 부장이 나가서 한바퀴 돌고 오더니, 누가 만세를 불렀는지 안 불렀는지 지금 안 부르니 알 수가 없다고, “그걸 색출할 수가 없습니다.”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또 하는 말이 “그럼 가서 기독교인을 잡아와.” “아니 기독교인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주일날이 되야 알지. 기독교인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이런 답답한 사람 있나? 기독교인은 물어보면 돼.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테니깐. 그리고 그들은 만세를 불렀으면 불렀다고 해.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기독교인은 자기 정체의식이 분명하고 내가 만세를 불렀노라, 라고 말한다 이거예요. “그리고 생명을 걸어.” 그것이 기독교인이라고 이게 헌병대 문서에 나오는 얘기예요. 여러분, 기독교인은 정체가 분명합니다. “나는 기독교인이요. 그리고 내가 만세를 불렀소.” 그리고 당당하게 나가서 만세를 부른 사람은 많아요. 그러나 만세를 불러서 희생된 사람은 기독교인 뿐이요. 왜요? 그들은 정직했으니까. 이것은 신학적으로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순교와 순국을 같이 생각을 했어요. 나라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하나예요. 나라를 위해 죽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은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요. 이 거룩한 마음이 한국교회의 신앙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애국과 믿음은 하나입니다. 일치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옛날에 부르던 찬미가라고 하는 찬송가 14장이 애국가입니다. 찬송가에 14장이 애국가가 들어있었어요. 여러분, 이 믿음 이 전통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라를 살리는 길도 여기에 있고, 사회를 구원하는 길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이렇게 자랑스러운 믿음의 조상을 주시고 아름다운 나라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에 따라 이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고 이 민족을 지켜가지 못했기에 오늘도 이렇게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이 나라의 의를 생각하고 이 나라의 번영을 찾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귀한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 거룩한 뜻을 먼저 앞세우게 하시고 그 나라와 그 의가 이 땅에 충만하여 주의 주시는 약속과 축복을 다 함께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