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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 2003.09.21
제 목 : 그의 은혜와 내 은혜
본 문 : 고린도후서 12 : 7 – 10절
그러니까 1963년. 제가 처음 유학하면서 맨 처음에 만났던 그런 글 중에서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을 보고 크게 감
동을 받고 그 후로 40년 동안 저는 아침마다 이 기도문을 외워 봅니다. 그리고는 제 책상에 크게 써서 붙여놓고 나의
기도를 대신해서 이 기도가 곧 나의 기도가 되기를 그렇게 소원하는 모범적인 기도문이 있어서 제가 이 시간에 한번
다시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입니다.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아주 참 대
단한 깊은 뜻이 담긴 기도문입니다. 소원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serenity, 냉정함을 주세요. 인간적인 감정, 인간적인 이상, 내 과거, 이런데 매이지 말고 냉정하게 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게 해주세요.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고칠 수없는 것은 받아들이게, 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주세요. 둘째는 ‘용기’ 입니다. courage to change I can
하나님이 할 수 있다 하시는 것이라면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고칠 수 있는 것이라면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또한
이 두 가지!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는 아주 유명한 기도입니다.
기독교의 서적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랫동안 올라 있는 간단한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책이름은 ‘다니엘 학습서’입
니다. 다니엘 학습서! 이것은 서울대를 2002년에 졸업한 김동환 전도사의 글입니다. 청년이 쓴 것입니다. 그는 2002
년에 서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는데 그것도 특별수석입니다. 기록적인 특별성적입니다. 전 성적 A+. 엄청난 성적으
로 서울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합니다. 그러나 그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나는 평범한 대한민
국 청년일 뿐입니다.” 그는 진실하게 말합니다. “그래도 뭐가 다른 게 있지 않겠느냐?” “ 그런 거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우리 집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밥 먹지 마라! 성경 읽지 않으면 공부하지 마라!” 그것뿐입니다. 그의 기록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3 되었을 때도 어머니한테 얼마나 맞았는지 피멍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말하
기를 “너 공부도 잘하는데 왜 때리냐? 공부 잘하는 아이를 왜 엄마가 자꾸 때리냐? 네 엄마 계모 아니냐?” 이렇게 까지물었다는 것입니다. 왜 맞았느냐? 그것은 정한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걸 못했어요. 혹은 정한 시간에 성경을 읽고공부해야 되는데 이걸 어겼을 때 엄청나게 매를 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을 신본주의적 학습이라고. 그는 이를 이름하여 다니엘 학습법이라고 했어요. 왜! 다니엘 1장에 보면 “다니엘이 뜻을 정하고.” 란 말이 있어요.
뜻을 정했다. 목적이 잇는 거예요. 뚜렷한 뜻과 확정된 목적이 있는 공부를 하는 거지요……. 생의 목적이 있어요. 그리
고 공부하는 거예요. 또한 세속적인 모든 것을 거부했어요. 왕이 좋은 음식을 먹으라고 했지만 “아니오. 나는 그런 우상
의 제물 같은 것 안 먹겠습니다.” 모든 세상 유혹을 거절했어요. 세속으로부터 거절하고 그 다음에 그는 하나님만 의지
하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지혜만 구했습니다. 다니엘의 일생을 요약한 것입니다. 자! 그렇게 살고 그렇게 공부하
는 것이 다니엘 학습서예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거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조금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성경을 어렸을 때 읽으니까 어머니가 칭찬을 합니다. “몇 장 읽었습니다.” 하면 “잘했다.” “몇 장 읽었습니다.” 하면 “잘
했다.” 처음에 한 장, 두 장, 석 장 하다가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7장씩 읽었는데요. 7장식 읽고 그날 공부를 하고 그러
는데 제가 미국 유학 시절에도요 이상하게 이걸 안 읽으면 시험을 빵점 맞을 거 같애! 왜 그런지? 아무리 바빠도 성경
부터 읽고 그 다음에 공부를 했던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 학습서는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필요
한 것이 아니에요. 모두가 “기도하지 않고 밥 먹지 마라. 성경을 읽지 않고는 공부하지마라!” 어떻습니까? 그것이 이 청
년을 특별한 사람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특별할 것이 없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의 은혜적인 인생관이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는 은혜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은혜가 뭡
니까? 은혜로 은혜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은혜가 은혜 되어야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우리는 은혜를 모릅니다. 우리에게 은혜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은혜로 은혜 되게 하는 하나님의 전권적 은혜 ! 주도적 은혜를 생각을 하고요. 두 번째는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게 하는은혜! 은혜도 중요하지만은 은혜를 은혜로 accept 받아들여야 은혜거든요. 자! 아무리 큰사랑이 있더라도 내가 사랑을 받아들여야 사랑 아닙니
까?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그 은혜. 또한 은혜를 은혜로 아는 은혜. 그래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기가 막힌 말씀이에요. 우리를 은혜로 아는 순간에 그는 크게 기뻐했어요. 그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았어요. 사도 바울이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은혜! 이
게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요. 자! 내 은혜가 무엇입니까? 내가 생각하기론 다 인간적 인거, 그래요. 병들은 건 은혜가 아
니에요. 병들었다가도 나아야 은혜지. 실패하는걸 은혜라고 생각하는 사람 없어요. 실패했다가도 성공하면 “아, 은혜받았다 그래요.” 우리의 은혜라는 것은 대체로 현재적이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아집에 속
하는 것들이에요. 인간의 저속한 욕망을 기초로 하고 있어요. 주로 이런 은혜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은혜가 더 화끈하게 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들을 하는데 비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은혜는 그런 게 아니에요. 영원한 것이에요.
철저하게 미래 적인 것이에요. 철저하게 내세 지향적이고 신령한 것이에요. 온전한 것이에요. 형통케 하는 것이요. 좀
더 나아가서는 좀 더 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 되게 하고 강한 온전한 그리스도의 인격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이 생각하는 은혜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은혜를 내 은혜로 받아들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에 내게 있는 내 은혜! 주님 말씀의 내 은혜! 내가 그것을 은혜로 받고 있느냐?’ 말이죠.
바울에 입장에 돌아가 봅시다. 바울이 그렇게 저속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은혜라는 것은 잘살고오래 살고 건강하고 복 받고 출세하고……. 세상은 그런 얘기는 안 하거든요. 바울에 입장에서 생각하는 은혜라는건
적어도 “복음에 길을 열어 주세요. 복음에 문을 열어 주세요. 선교의 문을 열어 주세요. 문을 활짝 열어서 어딜 가나 환
영받으면서 좀 더 크게 역사 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불같이 교회가 일어나고 온 세계가복음화 되는 그런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동분서주하는 거예요.” 그가 생각하는 우리는 지극히 본능적이고 선교적인 것이었어요. 그래서 또 하나의 구체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
냐면 “그러기 위하여 건강을 주세요. 하나님, 다른 것은 없어도 건강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게 밑천인데…….”
명예도 구하지 않고, 지식도 구하지 않고, 부귀도 구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님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하니까 최소한 건강
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건강을 주세요. 건강을 주세요.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까 세 번 기도했다.
특별히 시간을 정해서 기도한 것 같고요. 뭐 금식을 했는지 철야를 했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어째든 그는 말합니다. 세번 특별히 한 가지 제목을 위해서 기도했다.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 이것은 오늘 본문대로 이제는 죽여 달라고. 사
단의 사자, 이것을 빼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여기서 떠나게 해달라고…… 이렇게 구하고 있습니다. 그기도가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걸 생각하는 은혜가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사단의 사자, 육체의 가시가 무엇입니까? 이것이다 저것이다 학자들이 얘기합니다. 뭐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마는 저는 저 나름대로 연구해본 결과, 이는그 당시에 흔히 있었던 간질병입니다. 그래서 종종 쓰러지기 때문에 사도행전을 보면 계속해서 누가라고 하는 의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합니다. 그러면서 이병을 고쳐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갈라디아서 4장
에 보면 나옵니다. “너의 믿음을 시험 할만한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나를 업이 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
접했느니라.” 고마워하고 있어요. 한번 이렇게 추리 해볼까요? 갈라디아 교회에 가서 설교할 때 강단에서 말씀하다말
고 빙빙 돌아 가지고 거품을 물면서 쓰러져 버렸어요. 이게 될 노릇입니까? 상상해보세요. 여기서 제가 쓰러지면 어떻게 되겠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험에 들겠어요. 아마 뉴스에 나올 겁니다. 얼마나 서운해 가지고……. 얼마나 사람에게 믿음에 손해가 되겠어요. 그래서 너의 믿음을 시험한 것이 내 육체에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예요. 아주 그야 말로 궁극적인 것이에요. 이거 하나만은 하나님 제거해 주세요.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들어주지 않았어요. 응답하지 않았어요. 상황에 변화가 없어요. 상태에 변화가 없고, 다만 해석이 있을 뿐이에요. 상황에 대한 해석이있어요. interpretation이 있을 뿐입니다. 말씀하십니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엄청나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다. 그건 내 은혜다.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지만 그건 내 은혜다. 이대로가 내가 가진 불편한 몸이 이대로가 내 은혜다. 왜요? ‘난 큰 것을 원치 않아. 진실한 것을 원해. 위대한 역사를 바라지 않아겸손하기를 원해. 자기 자랑을 하는 그런 사람! 그럼 은혜가 다 없어진다. 오직 주님만 자랑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그런 사람으로 남기를 원한다. 내 은혜다. 너를 겸손하게 만들고 너를 은혜로 은혜 되게 하고 너를 그리스도 안에서강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거다. 그런고로 내 은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세 번 기도했다고 했어요. 이 세 번이라는 말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랍비들의 경험에 의하면 자식은 아버지에게 요청을 할 때 우선 소원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걸 주세요. 저걸 주세요.”라고 합시다. 한번 얘
기했어요. 거절했어요. 두 번 얘기했어요. 거절했어요. 세 번 거절하면은 이젠 더 구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너는 이것
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에요. 그 거절 속에 아버지의 뜻이 있어요. 이제는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야 되는 거예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것이 히브리 사람들의 신앙입니다. 여러분, 무응답! 계속해서 응답을 들어야 되요. 안 된
다면 안 되는줄 알아. 그것을 응답으로 받아내는 것이죠. 여러분, 외람되지만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치료하는 장
면과 비교 해보십시다. 냉정하게 보세요. 하나님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세요. 십자가 비켜가게 해주세요. 최소
한도 말 타는 때 지게 해 주세요. 그런 뜻인지도 모르겠어요. 똑같은 말로 세 번! 그러나 응답은 없었어요. 이제 무응답
을 응답으로 받습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 요한복음 12장에서 분명히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이대로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사랑의 잔이야! 그는 고로 이것을 내가 받아야 한다.” 그러고 십자가를
집니다. 세 번 구했는데 응답 못 받았어요. 그리고 그대로 응답으로 받았어요. 그리고 십자가로 진 거예요. 기도라는 것은 세 가지로 응답하세요. 하나는 “그래라!” 내 소원대로 될 것이다. 두 번째로 기다려! 아직 미숙. 때를 기다려! 기다리 라는 응답이 있고요. 세 번째 응답은 생각을 바꾸라! 발상을 바꾸라! 뜻을 바꾸라! 네 생각을 바꾸라! 이 세 번째 응답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이때 주님의 은혜를 내 은혜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내 은혜로받습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이나 11절에 가서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리라.
징계는 당시에 보기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으나 그러나 징계는 사랑이라구요. 여러분, 징계 받으면 서 기뻐해봤어요?
그러기는 어렵죠? 전 아버지에게 매 많이 맞았어요. 나를 살라는 건가? 죽으라는 건가?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이것은
나를 향한 사랑이에요. 그때는 아프기만 했어요. 화도 났어요. 그러나 철이 나면서 보니까 아니에요. 가끔 가끔 어머니
가 말씀하세요. 저를 위로하면서 “이놈아 너희 아버지가 너 때리고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아느냐? 밤에 잠을 못 자.”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를 사랑하긴 하는가 보다. 좀더 철이 나니까 그것이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없어요. 그의 은혜가
이제 내 은혜가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에요.
토레이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의 부흥회에 참석한 어느 여자 분이 찾아와서 “목사님! 저는 예수 믿은지도 오래됐고 부흥회도 여러 번 참석했는데 아직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이 지혜롭게 대답했어요. “돌아가서 이제는 다른 기도는 다 그만두고 단 한 가지 기도만 하십시오. 하나님 나 자신을 알게 해주세요. 내가 어떤 사람입니까? 내 운명이 무엇입니까? 나라는 사람을 보여 주세요.”
어느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있는 자기 모습이 보이는데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지 만신창이야! 머리에서 발끝까지
더럽고 추하고 도대체가 고개를 들 수가 없어. 그 추한 모습을 보고 몸부림을 치고 들어왔어요. 그 다음에 다시 와서 “제가 제 모습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까요?” “이제는 십자가를 보여주세요 라고 기도하세요.” 십자가를 바라
보는 순간 그 많은 좨짐이 다 벗어지고 깨끗한 흰옷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 다음에 보니 엄청난 사랑을 받은사람이 나는 그리스도 안에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에요. 그리스도 안에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어요. 이래서 구원에 확
신이 있는 참 하나님의 딸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도 주시고 실패도 주시고 고통
도 주시고 아니 질병까지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아직도 내 은혜에 집착하고 계십니까? 내가 생각하는 은혜만이 우
리에게 있습니까? 내 뜻! 내 소원! 꼭 여기에 메어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이제는 잘 이해가 되지도 않고 때로는 잘 납
득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그의 은혜, 인정 해야합니다. 그의 은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의 은혜를 믿고 수락하
고 받아들이고 나아가서 그의 은혜를 충만하게 알게 될 때, 바울처럼 오히려 크게 기뻐하므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머물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고 그 은혜 안에 겸손하고 그리스 안에서 강하게 되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내게 있는 내 은혜가 족하다! 그렇다면 주님이 주신 은혜가 바로 내 은혜입니다. 내게 만족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해서 몸부림치고괴로워하건만, 여전히 주님께서는 은혜의 길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컨대, 우리에게 은혜로 은혜 되게하는 믿
음을 주소서. 은혜를 은혜로 알게 하시고 은혜를 은혜로 받게 하시고 그 은혜를 기뻐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주시고 그 은혜 안에 강한 확실한 승리가 있게 하여 주이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