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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신 은혜

갈라디아서 2: 6 ~ 10

곽선희 목사

2001.09.02

날 짜 :2001.09.02
제 목 :내게 주신 은혜
본 문 :갈라디아서 2장 6절 ∼ 10절

미국의 월리엄 헐스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문사 편집인으로 있으면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했고, 돈이 모이는 데로 취미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골동품 수집가였습니다. 귀중한 세계적인 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하고 그것을 즐기며 사는 것을 마치 생의 목적처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진귀한 미술품이 있다고만 하면 세계 어디라도 좇아가서 그것을 사들이곤 했습니다. 이미도 많은 귀중한 것들은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유럽에 왕가에서 사용했던 도자기하나가 있다는 것을 정보에서 알게되었습니다. 잡지에서 그 그림을 보는 동안 그는 마음이 뛰었습니다. 아주 그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저것을 내가 꼭 사들여야겠다.’ 그리고 구라파를 여러 번 여행을 했고 추적을 해보았지마는 종적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가지고 있는 건지. 이 귀중한 물건이 어디가 숨어있나. 그렇게 안타까워하고 심지어는 실망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잡지를 보는데 잡지에 골동품에 대한 이야기가 났는데 그 골동품이 미국인에게 팔렸다 라고 써 있습니다.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굴까? 하고 이름을 자세히 보았더니 자기 이름입니다. 벌써 그 소장품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지마는 그것을 가져다 두기만 했지 살펴보질 않았어요. 자기가 가지고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다니면서 찾아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거예요.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것,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는 바로 그 어리석음을 지칭하는 말씀이올시다. 은혜를 은혜로 알 때만 은혜가 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자기자신, 가장 소중한 자기건강, 자기가 지금 처하고있는 이 현실의 귀중한 의미를 내가 깨닫지 못한다면 은혜도 은혜 될 수 없고 복도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멀리서 부러워할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은 나만 같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지만 나는 나 됨에 대한 만족이 없습니다. 은혜가 은혜 되는 것은 은혜를 은혜로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로 느껴야합니다. 은혜로 감격해야합니다. 그리고 은혜로움 그 안에서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 된 현실을 보면서 은혜 앞에 자기자신을 위탁해야 됩니다. 이 큰 은혜의 사니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은혜에다가 자기 운명을 그냥 던져버리고 삽니다. 바로 그러한 생이 그리스도인의 생이요 바른 생이요 행복한 생입니다.
유능한 핼렌 켈러 여사를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는 삼중 장애자입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불행을 딛고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하게 귀중한 일들을 많이 하며 심지어는 저술까지 하면서 살았습니다. 말년에 어떤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과 함께 한 평생을 살아왔는데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해 본적은 없습니까?” 헬렌 켈러 여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헤아리는 것으로 만도 시간이 없는데,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하는 것으로도 부족한데 어찌 원망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뻐하는 것으로도 시간이 부족해요.” 원망할 시간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남들은 그를 불행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세상 떠날 때에 그는 이렇게 유언을 합니다. “나의 일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이 어찌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내게 주신 은혜를 앎으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방 땅에서 디아스포라 속에서 태어납니다. 사실 이것은 나그네의 생활 속에서 그리 행복한 생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뒤늦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도 은혜였습니다.
요새 흔히 바이랭귀지라는 말을 합니다. 두 가지 언어를 다 할 수 있도록 태어나는 것 그 참으로 행복한 일이올시다. 여러분 영어 배우려고 그렇게 애쓰지마는 아에 그냥 미국에서 태어나면 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중고등학교 나오고 그리고 한국말로 여기 와서 공부하면은 영어 잘하지 한국말 잘하지, 아 이게 도대체 이런 대통이 어디 있습니까? 그게 바이랭귀지라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 바울은 헬라어와 히브리어 두 말을 다 합니다. 헬라문화와 히브리종교 투 컬쳐스, 두 문화를 다 통달했습니다. 그리고 가말리엘 문화에서 훌륭한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들이 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내게 주신 은혜라고. 그래서 그는 이방인에 사도의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렇게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는 택정함을 받은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감격해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또 다른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래오래 참아주셨다는 겁니다. 잘못된 길로 갈 때,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할 때, 다메섹으로 갈 때 그가 계속 잘못될 때에도 오래오래 참아주셨어요. 기다려 주신데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구요. 그뿐 아니라 자기의 진실을 알아주셨다는 겁니다. 내가 교회를 핍박했어도 몰라서 한 일이요. 스데반을 죽였어도 딴에는 율법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한 일이었습니다. 그 마음속에는 확실한 붉은 진실이 있었습니다. 충성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대한 충성. 잘못된 길로 가고 있지마는 그가 진실되다는 것을 인정해주신 하나님,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특별히 강권적으로 그를 불렀습니다. 사도바울을 설득한 것이 아니에요. 다메섹 도상에서 강제로 그를 붙들어 포로 했습니다. 강제로 붙들었다는 것, 강권적인 소명,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기자신을 포기하고 그의 뜻을 따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말합니다.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가 나를 잡았어요. 포로 했는데 포로한 그것을 나의 목표로 삼고 좇아가노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은혜요.
그는 자기의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 허물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약할 때에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설적입니다. 내가 인간적으로 약할 때에 은혜로 강해집니다. 내가 세상적으로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세계에서 강해지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약할 때 강해지는 그 신비로운 은혜 그걸 알고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신비롭게 놀라운 계시의 영을 주신 것을 생각하고, 특별하게 내게 주신 계시의 영을 인하여 그 은혜를 감사하고 있고요. 그가 깨달은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자기를 겸손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주었어요.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지마는 계속 그를 괴롭히는 병이 있었어요. 모름지기 간질병이라고 한번 추리해 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설교하다말고 쓰러진 일도 있는 것 같이 그렇게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병을 고쳐주시지는 아니하시고 ‘누가’라고 하는 의사를 계속 동반하게 했습니다. 병은 가지고 일을 하고 하나님의 일에는 지장이 없도록 해주었어요.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있슴으로 내가 겸손하다.’ 도저히 교만할 수가 없어요. 잠시도 교만해지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질 않아요. 가장 낮은 처지에서 온유 겸손하게 그렇게 살아가며 은혜를 지켜갈 수 있도록 해주신 그 은혜를 감사하고 있어요. 정말 은혜를 아는 사람이에요.
그런가하면 바울은 경륜적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골로새 1장 25절에 보면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아주 신비로운 고백을 합니다. God’s Dispensation,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선지자를 통하여 또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상징적으로 혹은 예표적으로 역사하시고 그 모든 예언이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고, 그 다음에 교회가 설립되고, 그 복음을 만방에 전하기 위하는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있단 말이에요. 예수께서 이루신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방에게 전하는 데에 내가 심부름꾼으로 거기에 사역자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는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속에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이 은혜를 깨닫고 있었어요. 간간이 그는 그 나름대로 의심도 많았고 생각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서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곳에서 지하실 감옥에 2년동안 처박혀 있을 때, 그와 배를 타고 로마로 갈 때에 바울이 탄 이 배가 왜 파손을 되는 겁니까? 그리고 로마에 가서 음침한 지하에 가서 몇해동안 썩을 때 얼마나 속이 컬컬하고 답답했겠습니까? 목이 터져라 하고 복음을 전해야될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죄명도 분명치 않게 감옥에서 살아야되느냐 이거예요.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주의 경륜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이 친위대에게 전파됩니다. 로마의 고관들에게 전파됩니다. 이것을 깨eke고 빌립보 1장 12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라노라.” 나의 당한 일이 이게 뭡니까? 이 모순되고 부조리한 삼년간의 현실이 헛된 일이 아니더라구요.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구요.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었어요. 놀라운 역사가 조용히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게 주신 경륜, 그 큰 시나리오 속에 내가 있음을 깨닫고 내 현실이 있음을 깨닫고 그는 그 은혜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항상 그러기에 먼 밝을 빛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베스트 셀러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많이 팔린 책이다 그 뜻입니다. 그러나 롱셀러라는 많은 잘 듣지 않습니다. 오래 오랫동안 가장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팔리고 읽혀지는 책, 서양에서 제일 많이 읽혀지는 책이 바로 여러분이 잘 아는 마가렛 미첼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고 하는 소설입니다. 영화로도 나왔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있습니다.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해서 많은 피해가 있는 그 고난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스칼렛이라는 여주인공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가정적으로 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작은 본래 그 제목을 “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지으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고 했습니다마는 역시 이 소설의 주제는 Tomorrow is Another Day 입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의 뜰 것이다. 그 마지막 장면에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의 뜰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여기 멈추는 게 아닙니다. 과거의 연장으로 미래가 있는 게 아니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바로 이 한마디 때문에 롱 셀러가 되는 겁니다. 낙심은 없습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뜰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위대한 경륜이 우리 앞에 전개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 뿐만 아니라 맡은 바의 은혜를 알고있었습니다. 내가 맡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있어요. 오늘 본문에 자세히 보세요. 이제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는 할례자를 맡겼어요. 유대사람을 맡겼고, 내게는 이방사람을 맡겼어요. 그 그리스도가 내게는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맡기셨다, 나는 이것을 맡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는 분담을 알고 있어요. 그는 분복을 알고있고 분담을 알고 있고 분직을 알고있어요. 내가 하는 일이 뭔가 하고요. 고린도서에서 보면 더욱더 자세하게 그는 갈파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었고 어떤 사람은 물을 주고 어떤 사람을 가꾸고 어떤 사람은 거두고. 그는 자기 역할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심었노라. 누군가가 거두게 되겠지.’ 여러분 요새 보면 너무 사람들이 조급해요. 자기가 심고 자기가 거두려고 그래요. 오늘 심고 저녁에 거두려고 그래요. 그런 게 아닙니다 역사라는 것은. 나는 심기만 하고 다른 사람은 가꾸기만 하고 그 누군가가 거두게 되겠죠. 역할분담이 있습니다. 은사분담이 있는 걸 알아야되요. 여러분 때로 우리는 길을 내고 거름을 주고 그리고 기초공사를 하고 끝낼 수도 있어요. 다음 세대사람이 거두게 되고 영광과 번영을 누리게 해도 되겠죠. 여러분, 우리가 통일의 문제만 해도 그래요 너무 조급하게 통일하려고 해요. 통일의 준비만 하면 되지 다음 사람, 다음 사람, 해가면서 해야지. 내 눈앞에서 화끈하게 만들어 보려고 하다가 다치지 않습니까. 그건 잘못된 거예요. 내가 할 일이 뭐며, 우리가 할 일이 뭐요, 이 세대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나는 교회의 기초를 놓는 사람이래요. 심는 것으로 족하다. 누군가가 저 앞에서 거둘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 고로 이 같은 내게 주신 은혜를 앎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기둥 같은 분들과 교제의 악수를 했다. 당신이 맡은 것은 이것이요 내가 맡은 것은 이것입니다. 당신도 은혜요 나도 은혜요 은혜와 은혜 속에서 서로 교제의 악수를 했습니다. 악수라는 것은 동등하다는 뜻이에요. 이것이 바로 은혜의 교제였습니다. 그 옛날 공자 선생님께서 말입니다 “오악(五惡)을 용서하던가 등한히 여기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라고 말했어요. 5악, 다섯 가지 악이 있다고 했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만사에 빈틈이 없고 시치미를 딱 때면서 간악수를 쓰는 자. 둘째는 공정치 않은 일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공정한 듯이 처리하는 사람. 셋째는 전부 거짓말 투성인데도 워낙 구변이 좋아서 진실인 것처럼 떠드는 사람. 넷째는 속으로는 음흉한 악당이고 그러나 기억력이 좋아서 아는 것이 많아 사람을 홀리는 사람. 다섯째는 못된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 다섯 가집니다. 여러분 무얼 생각하십니까? 전부가 거짓말쟁이예요. 진실이 없다 그 말이에요. 문제는 진실이요. 은혜 앞에 진실해야 됩니다. 다 없어도 진실은 있어야 됩니다. 다 가지고도 진실이 없으면 무너집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진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진실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주께서 내게 대하여 나를 충성되이 여겨. 충성되다는 말이 피스티스 진실이라는 말이에요. 은혜를 앎으로 충성했고, 은혜를 깨달으므로 감사했고, 은혜 안에 삶으로 그는 가슴을 열었어요. 은혜 안에서 누구든지 용서할 수가 있었고, 누구든지 사랑할 수가 있었고, 누구든지 함께 할 수가 있었어요. 성도여러분, 내게 주신 은혜를 바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 진실해야겠습니다. 참으로 정직할 때 새로운 은혜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로 우리가 살아왔건만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하고 사는 미련함을 용서하옵소서.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은혜, 우리들에게 베푸신 현실을 통한 은혜,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속에 있는 내게 주신 경륜을 깨닫고, 또는 개인적으로 내게 분담된 내 몫의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을 알면서 늘 감사하며 감격하며 찬송하며 승리할 수 있고 은혜 안에 정직한 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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