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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2.11.24
제 목 :너희 묵은 땅을 갈라
본 문 :예레미야 4장 1절 ∼ 4절
대영제국이 오랫동안 자존심을 걸고 만들어낸 세계적인 백과사전이 있습니다. 모름지기 여러분 가정에도 한 부씩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Encyclopedia Britannica, 하도 유명한 세계적인 최고의 백과 사전으로 그렇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768년 스코틀랜드에서 설립된 회사에서 만든 것으로서 200년이 넘는 동안 전통을 자랑하는 그러한 백과사전입니다. 1990년대에만 해도 년 6억 5000만불이라고 하는 사상 최대의 매출고를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에 마이크로소프트와 글로리아 두 회사에서 동일 종류의 제품이 나오면서 부득불 이 브리태니커 회사는 제 3위로 위치가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CD-ROM 백과사전 때문입니다. 처음 CD-ROM이 나왔을 때 브리태니커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애들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역사와 전통을 고집한 결과로 고객은 역사와 전통을 운운하는 브리태니커의 묵은 땅을 떠나버렸습니다. 1999년에 이 회사는 헐값에 팔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은 이 시대를 향한 중요한 메시지를 말해줍니다. 200년의 화려한 전통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그 명예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이것이 현대요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이 시점입니다. 창조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큰 변화를 말합니다. 이 변화는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생명은 반드시 이 모든 다가오는 사건들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데 그대로 머물러 있는 동안 그것이 현상유지가 아니라 그대로 밀려나고 말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변화라는 것은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그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참고 기다리면 무슨 일이 있겠지,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심리학자 D. 슐츠(Duane P. Schultz) 의 Growth Psychology 라고 하는 책에서 성숙한 인간, 현대인으로서 성숙한 인간의 특징을 몇가지로 말해줍니다. 먼저는 무의식 속에서 살지 않고 항상 의식을 분명히 하고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언젠가 한 번 책을 보니까 프로 골퍼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수만번 골프를 쳤지만 이 사람들은 칠 때마다, 한 번 골프채를 들 때마다 다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다시 생각하면서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행동이라고 그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따라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밝은 의식 속에 살아간다, 그 의식으로 자신을 통제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특징입니다. 또 하나는 성장 동기와 자아 형성의 동기를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누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의미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고 자아실현의 동기를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스승도 내가 만나는 것이고 좋은 친구도 내가 만드는 것이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자기 수용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한 과거가 있든지 어두운 날이 있든지간에 그것은 그날이고 항상 오늘을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지나갔다, 나는 쓸모가 없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도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할 일이 있다, 그리고 이 시점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라고 자기를 수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절대 비생산적인 부정적인 일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절대로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항상 생산적 경향을 가지고 나아간다 이것이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종자의 문제와 농사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역시 농사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종자입니다. 좋은 종자를 얻어야 합니다. 좋은 종자에서 좋은 농사가 되고 좋은 결실이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종자대로 결실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것이 있기 위해서는 몇가지 갖추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첫째가 좋은 토양입니다. 땅이 좋은 옥토여야 하고 비료가 넉넉해야 합니다. 좋은 토양 그리고 좋은 종자, 그 다음은 좋은 일기. 햇빛도 있어야 하고 비도 와야 합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해서 수고하는 농부의 땀이 있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네가지 절대요소를 말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밭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종자는 좋습니다. 틀림없는 좋은 종자입니다. 그런데 밭이 틀렸습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에 말한대로 여기는 묵은 밭을 말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농촌에서 자라면서 가끔 어른들과 같이 들을 지나갈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땅은 잘 가꾸어서 좋은 곡식이 자라고 있고, 어떤 땅은 그만 그 주인이 게을러 빠져서 잡초가 우거지고 묵은 땅이 있습니다. 그것을 볼때마다 “참 아까운 땅이다, 저 땅을 저렇게 묵히다니” 그런 말씀들을 어른들이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묵힙니다. 그 다음에는 버려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잡초가 우거집니다. 그 다음에는 묵은 땅이 되고 나면 다시 개간해야 됩니다. 아주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또 거쳐야 됩니다. 좀 더 묵으면 아주 쓸모 없어지고 맙니다. 굳어져서 다시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묵은 땅이 무엇이겠습니까? 농사에만 묵은 땅이 아니라 우리 인격에도 묵은 땅이 있습니다. 먼저는 사람들은 모든 행동에서 생각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인간입니다. 생각이 먼저 있어서 생각에 따라 행동을 합니다만은 행동이 반복되는 동안에 생각은 물러가고 자동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 때는 흔히 말하기를 익숙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에 보니까 우리 할머니께서 물레질을 잘하시는데 깜깜해요. 불이 다 꺼지고 없는데도 물레질을 잘 하십니다. 그래서 “아이구, 보이지도 않는데 이렇게 잘하세요?” 그러니 “내가 몇십년을 했는데” 하시며 그 깜깜한 곳에서 계속 실을 뽑으십니다. 이런 행동은 참 익숙하고 능숙한 것 같으나 거기에는 생각이 없습니다.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행동이 지속되면서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지속될 때에 생각없이 문화화 됩니다. 문화화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제부터는 전통이 됩니다. 전통이 되면 하나의 가치관이 되고 때로는 교리가 되고 사람의 지침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고정관념에 빠지게 됩니다. 먼저는 묵은 경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낡은 경험입니다. 반복되는 경험, 이것은 아무 생각없이 익숙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려면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익숙한 것을 버려야 되는데 익숙한 것이 안일하고 편하고 쉽고 거기에 머무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생각이 그 경험 속에 깊이 빠져버리고 맙니다. 경험이란 사람에게 지식을 주고 지혜를 주지만 반복되면서 이 사람의 고집이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해보았다.” 무엇을 해보았다는 말입니까? “내가 다 해보았다.” 이것이 바로 고집불통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제가 가끔 결혼주례를 할 때마다 신랑신부에게 당부를 합니다. 가정생활 중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밥투정 하지 마라”고 합니다. 신랑보고 “밥투정하지 말아라. 만일에 아내가 음식 솜씨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거 네 팔자이지 어떻게 하겠느냐. 그냥 살 생각하고 밥투정은 하지 말아라.” 그리고 제가 한마디 합니다. “이것을 잘 기억해라.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가면 중국에 13억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살고있는데, 내가 확인을 해보았는데, 중국 사람은 전부 남자가 밥을 한다. 알았냐?” 시장도 남자가 봅니다. 이것만 알아라고 하니까 알겠다고 합니다. 그렇게만 살면 된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가끔 보면 부엌일은 여자만 하는 것입니까? 또 저 뒤에 있는 시어머니가 종종 그러지요.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또 경상도 남자들은 더 합니다, 양반들. “택도 없다. 어딜 부엌에 사내자식이 드나들어.” 깨버리십시오. 이것이 고정관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법칙도 아니고 만고의 법칙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관습일 뿐입니다. 전통이 어떻고… 피곤합니다. 그것을 깨지 못하면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마음을 버리십시오. 우리 교인 가운데, 그런 분이 계십니다. 남자가 나이 50이 넘어서 퇴직을 하였는데 어느날 부인이 집에 들어가니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더랍니다. 생전 처음이랍니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고 하니까 남편 말이 “당신이 나를 위해서 한평생 부엌에서 일을 했는데 내가 오늘 한 번 했기로서니 잘못된 것이 있나.” 그런데 그 부인 얘기가 그것이 고맙지 않고 서글펐답니다. 그래서 울었다고 합니다. ‘어쩌다가 이 남자가 이 모양이 되었나.’ 그러나 여러분, 고정관념을 버리십시오. 아니 둘이 부엌에서 일을 하면 안됩니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까? 이 생각을 바꾸지 못하면 제 명에 못 죽습니다, 속상해서. 그럴 것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이라고 하는, 묵은 경험에 속하는 잘못된 생각힙니다. 해묵은 것입니다. 털어버리십시오. 다 털어버려야 합니다. 또한 묵은 지식이 있습니다. 백과사전이 바로 여기서 실수한 것입니다. 무엇이 어떻고 어떻다고 설명을 해놓았는데 그것이 영원한 것입니까? 그 지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200년 전통이면 더 한심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백과사전, 이제는 그것이 별 소용이 없습니다. 항상 새롭게 생각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자, 보십시오. 지식이라는 것, 이미 아는 지식에 집착하게 될 때에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이미 아는 그릇된 지식으로 새 지식을 비판해버립니다. 그것은 말도 안된다,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자기가 가진 낡은 지식에 매여서 교만합니다. 그동안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지식을 활용하지 못합니다. 수용하지 못하고 새로운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급변하는 세상에 어떻게 살겠습니까? 북한말로 한마디 할까요. 골통을 바꿔야 됩니다. 그 사람들은 머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골통이라고 합니다. 좀 이상하죠? 어쨌든 골통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지식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또 한가지는 낡은 감성, 이것이 바로 묵은 감성입니다. 낡은 감성, 이것은 자신도 모르는 것입니다. 감성의 문제니까. 제가 이 여러 가지 사업에 관계합니다. 선교사업이니 뭐 학교 이사장이니 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이사회나 이런 것이 모일 때 보면 참 답답하고 어렵습니다. 이것은 안되고 이것은 옳다고 하면 “이사장님 그것은 옳은 말씀입니다만은 정서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 정서 때문에 망조입니다. 안그렇습니까? 옳기는 옳으나 정서가 안된대요. 왠 썩어진 정서냐고 제가 한 번 소리를 질러 보았습니다. 그 감성 자체가 병든 것인데 그 생각을 못합니까? 상처난 감성이예요. 병들어 비틀어진 마음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제가 하나 고백할 말이 있습니다. 제가 일본 사람들과 얼마전에도 목사님들과 세미나를 했지만, 일본 사람들끼리 좀 지내기는 해요. 전 아직도 일본사람이라고 잘 못합니다, 일본놈이라고 하지. 왜 그러할 것 같습니까? 왜 그러냐면 어렸을 때 한국말 했다고 해서 매를 맞았거든요. 한국사람이 한국말 하는데 이거 한국말 한다고 조그만 아이들을 막 때립니다. 거기서 받은 상처난 감성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회개를 하려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이거 잘 생각해야 합니다. 감성이 병든 것입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당한 한이 있습니다. 한에 맺힌 이 민족의 감성이 정상입니까? 이것을 의지하겠다니 어떻게 새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그 가슴을 확 돌려야 하겠는데 이것이 안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한을 빨리 털어버려야 합니다. 묵은 정서 묵은 땅을 갈아버려야 합니다. 묵은 땅과 묵은 정서 묵은 이성 묵은 가치관을 확돌려 버려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네가지 밭이 있느니라. 그래서 길 가와 같은 마음,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 돌짝밭과 같은 마음, 이것가지고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길 가처럼 반질반질하게 닦았으니 씨를 뿌리면 새가 와서 주워먹고, 가시덤불에 뿌리니 자라지 못하고, 또 돌짝밭에 뿌리니 자라다가 시들지 않느냐. 오로지 옥토가 되어야 한다. 길 가와 같으면 폭파해야 하겠고 가시덤불이면 불질러야 하고 돌짝밭은 깊이 갈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옥토를 만든 다음에 거기에 씨를 뿌려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야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라고 하는 분의 시 한편의 줄거리만 제가 소개해봅니다. 황량하고 거친 산속에 살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나서 허둥지둥 둥지에 돌아왔습니다. 둥지를 떠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보았습니다. 발버둥을 쳤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이 둥지를 떠나면 꼭 죽을 것 같아 안간힘을 썼으나 폭풍이 워낙 거세어서 둥지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날개를 펴고 폭풍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그대로 날아갔습니다. 끝없이 날아갔습니다. 얼마동안 날아갔을 때 폭풍은 멎었습니다. 조용해졌을 때에 땅을 내려다보니 넓고 푸른 초원이 있었습니다. 생전 보지 못한, 전에 살던 곳과는 비교도 안되는 아름다운 초원이 눈 앞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새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내가 태어난 둥지를 떠나지 않겠다고 몸부림을 칩니까? 묵은 땅에서 언제가지 헤메야 하는 것입니까? 날개를 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는 땅을 향해서 자유롭게 그 방향으로 날아가십시오. 여러분 내가 말씀을 쫓아 사는 것이 아니구요 말씀이 나를 주관하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길로 그대로 나를 맡기십시오. 날개를 펴십시오. 해묵은 전통과 고집을 버리십시오. 성공이라고 하는 허상을 버리십시오. 나라고 하는 우상도 다 버리고 묵은 땅을 깊이 갈아버리고 새롭게 파종해야 합니다. 고정관념에 집착되어있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거듭나야 되겠다. 겐네테아노센.” 중생이라고 하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원어대로 보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Born from above, 위로부터 태어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야 되겠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묵은 땅을 갈고 다시 파종하고 주의 말씀의 씨앗을 우리의 가슴에 받아들이면 분명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리석고 우둔한 저희를 경험도 지식도 정서도 다 빗나갔습니다만 낡은 것에 매여 헤어나지 못하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이제 우리 모든 집착된, 그릇된 과거를 털어버리고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때로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순종하여, 말씀이 내 안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놀라운 역사를 다시 체험할 수 있게 은혜를 더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