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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3.02.02
제 목 :먼저 할 일 먼저 하라(1)
본 문 :마태복음 6 : 25 ∼ 34
E.M. 그레이라고 하는 교수가 쓴 책에 “The Common Denominator of Success” 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성공의 공통분모”라고 하겠습니다.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의 생애와 그 삶의 철학, 그리고 업적들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비결에 공통분모가 없을까, 공통점이 무엇일까를 연구해서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첫째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성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정열을 다하여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가하면 그 일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뭘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정열을 쏟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공통으로 성공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인간의 힘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이 저자의 말대로는 운이 좀 따랐습니다. 역시 운이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같이 인간관계가 좋았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하고 틀리고 누구하고 원수지고 누구를 비방하고…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성공이 없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좋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 분이 말하는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세 가지보다 더 중요한 것,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가하면 성공한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좋고 나쁘고, 이롭고 해롭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버느냐 못 버느냐, 여기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냐, 우리 모두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이냐였습니다. 중요한 일, 소중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거기에 정력을 쏟았습니다. 우선 순위를 정했습니다. 실천을 했습니다. 그것이 특징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스티븐 코비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Seven Habits of Effectice People”이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책을 써서 알려지고 한국에도 두 번이나 와서 특강을 한 일이 있습니다. 베스트 셀러 저자로 많이 알려진 분입니다. 이 코비 박사의 또하나의 알려진 저서가 있습니다. “First Thing First(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긴급한 것을 먼저 하면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 그럿습니다. 긴급한 것. 무엇인가 급하다고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립니다. 급할수록 다시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런데 급한 것만 서두르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그런 허점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 라고 말합니다. 성숙한 인간, 미숙한 인간을 구분합니다. 성숙한 인간이란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무를 보는 사람은 숲을 못봅니다. 숲이라고 하는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산을 올라갔다가 조난을 당했다고 합시다. 내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자꾸 산 아래로 아래로 내려만 가면 되느냐? 안됩니다. 등산 전문가들은 ‘길을 잃었거든 올라가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저 밑을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정한 다음에 내려가라’했습니다. 조난은 이렇게 해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부분보다 전체를 봅니다. 그런데 미숙한 사람은 언제나 부분을 봅니다. 작은 것을 보고 큰일을 망치는 것입니다. 또한 성숙한 사람은 보다 멀리 봅니다. 눈앞의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다음, 다음, 몇차원 높여서 멀리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여호수아와 갈렙,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하였습니다(민 13-14장). 믿음으로 본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러나 같이 갔던 다른 사람들은 현실만 보았습니다. ‘불가능하다. 그 사람들 앞에 서니 우리들은 메뚜기같더라.’ 이렇게 망조가 들었습니다. 보다 멀리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현실만 생각합니다. 바로 소인배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여기서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숙한 사람은 자기일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고뭐고 할 것 없고 나 살아야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결국은 나도 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망가뜨립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우리는 항상 보다 크게, 보다 넓게, 보다 멀리, 그리고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먼저 할 일 먼저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먼저 할 수 있을까? 먼저 목적지향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인 무엇인가, 항상 물어야 합니다. 묻고, 그 목적을 향해서 일직선적으로 그 목적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적에 위배되는, 달리 돌아가는 생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의미창조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적어도 그 일을 위해서는 내가 목슴을 걸 만큼, 그만큼 확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가입니다마는 제가 1974년쯤 겪은 일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주일날 목사님이 안계시는 교회를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몇주일 안내받아서 설교를 하고나니 점심시간에 집사님들끼리 모여서 숙덕숙덕하더니 돈을 모아서 자동차 한 대를 사주는 거입니다. “목사님, 이 차를 타고 내왕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모시러 가기도 번거롭고요. 그렇게 합시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그 차를 몰고 교회마당에 척 들어섰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눈을 휘둥그래 뜨고 달려나옵니다. “아니, 여기까지가 어떤 길인데 손수 운전하고 오신 것입니까? 목사님 계신 곳에서 여기까지 오는 Pasadena Freeway에서 옛날에 제임스 딘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 위험한 길을 지나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대답한 말이 있습니다. “교회로 오는 길이니까 왔지요. 교회를 향하여 가는 길이니 가다 죽어도 좋다, 하는 마음으로 온 것입니다. 놀러가는 길이었다면 못왔지요. 가다 죽으면 안되지 않습니까” 이래서 안되지, 하는 일들은 하지 마십시오. 이대로 죽어도 좋다, 하는 일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하는 일 먼저 하는 지혜입니다. 목숨을 걸만한 그런 의미의 일을 먼저하라, 이것입니다. 또한 쉬운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하도록 은사를 주신 일은 쉽습니다. 가능한 것을 가능케 해야 합니다. 닫힌 문 두드릴 것 없습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게끔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을 꼭 이렇게 말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은 못해서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시시해서 안한다고. 결국 다 못하는 것입니다. 못하는 것은 그대로 두십시오. 누군가가 할 것입니다. 못하는 것은 그대로 두십시오. 누군가가 할 것입니다. 내게 맡겨진 일, 가장 쉬운 일, 확실한 일, 거기에 하나님의 효과적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할 것입니다. 또한 나는 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남의 일 간섭하지 마십시오. 그거 신경쓰지 마십시오. 오늘도 내가 할 일만 내가 합니다. 부부간에도 아내는 남편보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십시오. 내가 아내이면 아내일만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두십시오. 남편은 남편일만 하십시오. 심지어는 자녀교육까지도 그렇습니다. 자녀들 보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십시오. 당신일만 똑똑히 하십시오. 아이들은 저절로 클 것입니다. 내가 할 일, 이것만 내가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지혜의 지름길입니다. 어차피 다 알 것도 없고 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 할 수도 없고 다 가질 수도 없습니다. 다만 나에게 맡겨진 일, 오늘 맡겨주신 일만 알고 거기에 충성과 진실을 다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본문에 보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잘 설명해줍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입니다. 우리, 그것 때문에 고생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본문에는 그 해결의 길이 걱정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하십니다. 먹을 것, 입을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주시느냐, 누구에게 이 모든것을 넉넉히 주시느냐하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먼저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요 그리스도의 의를 먼저 이루어야 그 다음에 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할 일 먼저 하는 , 그 순서가 바로되어야 합니다. 그 순서가, 우선순위가 바로될 때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해결책입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귀한 고백을 할 때 예수님께서는 만족하게 여기시고 ‘내가 네게 천국열쇠를 주겠다. 너는 베드로다. 그 신앙 위에 내가 교회를 세우리라.’ 큰 복을 허락하십니다. 베드로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다는 말씀을 하시니 ‘안됩니다’하고 말리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냉정하시게도, 정말 예수님답지 않게 냉정하시게도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고 질타하십니다. 사랑하는 제자를 가차없이 ‘사단’이라고 부르십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너는 사단이다, 하십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 얼마나 강한 말씀입니까? 왜 그러셨을거 같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영광도 주셨습니다. 능력도 주셨습니다. 권세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없는 영광을 바랐습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을 바랐습니다. 먼저 십자가를 지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이, 뜻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라고 기도하십니다. 그 ‘나의 뜻’이 무엇인지 한없이 궁금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분명히 십자가를 안지시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내일이 아니고 다른 시간에… 혹 그런 뜻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뜻 앞에 섰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무슨 말씀입니까? 내 뜻은 뒤에 두고 ‘아버지의 뜻부터 먼저 이루십시오’ 하신 후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내려오실 때 하나님께서 내게 지우시는 십자가를 내가지지 않겠느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 먼저 이것부터 마시시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해서 부활의 영광을 얻고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먼저 십자가를 –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내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요새 사람들은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따라가려고 합니다. 십자가에 내가 매달려야 하는데 십자가를 또 지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내 멋대로.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엄청난 희생입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 그러고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이루고야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지고 성령으로 인하여 이루어지고 말씀으로 인하여 이루어지고 교회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그 성격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 다음에는 나로 인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그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해야 하고, 내가 그 하나님의 나라 안에 살아야 하고, 나와 하나님의 나라, 나로 인한 하나님의 나라의 속성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소원을 아뢰었는데 하나님께서 기도응답 해주시기를 내가 너에게 세 가지 소원만 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습니까. 한 가지도 고마운데 세 가지를 들어주시겠다니.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했더니 모든 사람이, 모든 여자가 사랑을 하는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는데, 그러다보니 귀찮아 못견디겠는 것입니다. 사랑공세에 지쳐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할 수 없이 두 번째 카드를 내놓았습니다. ‘하나님, 여기서 구원해주십시오.’ 그래서 이제 모면을 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카드를 소모하고 마지막으로 이제 무슨 소원을 아뢸까, 뭐라고 기도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업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가르쳐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데 “내가 만일에 너라면 ‘사랑의 능력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겠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두 번째는 ‘솔로몬 왕처럼 지혜로운 마음을 주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주십시오.’ 세 번째는 ‘범사에 진실하고 충성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겠다.” 이 사람이 조용히 생각하다가 ‘아멘’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를 앞에 놓고 내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앞으로 임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그 위대한 나라를 앞에 바라보면서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이것이 우선순위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날이라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겠습니까? 이것을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하는 말 ‘제테요’는 특별한 말입니다. 히브리어적 개념으로는 기도한다는 뜻이요 목적삼는다는 뜻이요 온정력을 다 기울여 힘쓴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eek’라고 번역합니다.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이 모든 것을 주신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이 모든 것 – ‘타우타 판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주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일 내가 하고, 내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그는 그의 일을 하십니다. 주시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십니다. 내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아니하므로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선 순위가 바로 되어야 뒤에 성공이 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늘 주님 앞에 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기 전에 주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것만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없고 내 뜻만을 고집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내 뜻을 접어두고 다 부인하고 아버지의 뜻을 먼저 찾게 하시고, 그리하여 주께서 예비하신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축복을 다 함께 누리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