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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평화의 복음

미가 4: 1 ~ 5

곽선희 목사

2002.06.23

날 짜 :2002.06.23
제 목 :영원한 평화의 복음
본 문 :미가 4장 1절∼5절

모두는 평화를 원하건만 세계에는 전쟁이 있고 전쟁이 그칠 날이 없고 계속 전쟁의 위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모두의 마음속에는 항상 평안이 있기를 바라면서도 바라는 평안이 아니라 근심, 걱정, 때로는 두려움, 이런 많은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주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한 번 함께 들으며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청명한 날 아침에 닭 한 마리가 어쩌다 실수를 해서 오리를 밟았버렸습니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발끈 화를 내면서 “네가 나를 밟아? 그럴수 있느냐” 그리고 못마땅해하면서 “한번 견뎌볼래?” 그러고 대들어서 오리가 닭하고 싸우게 됩니다. 푸드득거리다 보니까 그만 실수를 해서 옆에 있는 거위의 뺨을 때렸습니다. 거위가 또 화를 내며 하는 말이 “아니, 오리가 건방지게 거위를 때려? 네가 어디 그럴 수가 있느냐?” 그리고 또 한바탕 소란을 떨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옆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그만 밟아버렸습니다. 고양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이 건방진 것들!” 그리고 물어뜯겠다고 쫓아다니게 되니까 얼마나 요란스러웠겠습니까. 그랬더니 옆에 있는 염소를 그만 건드렸습니다. 염소가 “이 건방진 고양이가 어디 염소에게 대드느냐”고, 그리고 고양이를 받아버리겠다고 쫓아다닙니다. 그러다가 그만 말의 옆구리를 차버렸습니다. 말이 호령을 하면서 “이것들 감히 어디다가 이렇게 손을 대느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이러다 보니 순식간에 마구간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온통 싸움판입니다. 농부가 나와서 이 꼴을 보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릅니다. 조용하라고. 비로소 조용해졌답니다. 여러분, 이 전쟁의 문제가 경제 문제 같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치문제 같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전쟁의 문제는 심리학적인 문제입니다. 기분의 문제입니다.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싸우는 사람들 하나같이 보십시오. 기분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내가 이대로는 참을 수 없다, 그것입니다. 참, 이거 큰 문제입니다. 욕심과 미움과 자존심, 그리고 교만! 복수하려는 마음. 이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자존심은 더욱 강합니다.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 가만히 순종하는 것 같아도 속에서는 끝없는 복수심이 솟구쳐 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들의 도덕성을 따라 그들의 심리적 상태를 따라 심판하십니다.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 찰 때에 사람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인격도 망하고 나라도 망합니다. 그 마음에 평화가 있을 때에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관용합니다. 그 땅이 복을 받고 그 농사도 잘 되고 사람도 잘 되고 사회도 잘 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그의 공의를 따라서 심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언제 어떤 길로 올 수 있을까요? 저는 몇 년 전에 타임지에 크게 실렸던 커버스토리, 그것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월남아가씨가 조그마한 오토바이를 하나 타고 그저 달리면서 활짝 웃는 모습이 타임지 커버에 크게 나왔습니다. 내용은 월남이 그동안 어려웠던 사정을 쭉 이야기했습니다. 아시는 대로 미국사람들이 월남에 얼마나 폭격을 했습니까? 그 자연자원이 풍부한 땅에 그대로 폭격을 하고 고엽제를 쓰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까지도 군인들이 가서 같이 동참해서 월남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딛고 일어서면서 하는 말입니다. “과거를 잊지 말아라. 그러나 과거에 매이지 마라.” 그래서 저들은 문을 활짝 열고 미국사람들을 영접합니다. 우리 한국사람들도 영접하고 한국과도 아주 좋은 관계에 있고 특별히 지금 월남에 가면 한국의 중고차들을 수입하는데 그 중에도 한글로 아직도 이름이 쓰여있습니다, 어느 교회 자동차라고. 그것 그대로 가지고 다니면서 좋아합니다. 그것이, 한국글자가 쓰여져 있는 차가 순수한 것이랍니다. 그게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뼈아픈 과거를 잊고, 접어놓고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그들의 마음, 참 부럽습니다. 여러분 왜 그런지 아십니까? 북한에 가보면 그들은 아직도 6.25전쟁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많이 폭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초토화되었습니다. 그 때의 아픔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불태우고 있습니다. 살 값을 하겠다고 합니다 살 값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에서부터 어른까지. 그게 프로니 음악이니 뭐니 전부가 다 그 이야기뿐입니다.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라고 하는 소설은 너무나 유명해서 여러분이 다 아실 것입니다. 이것을 뮤지컬로 만들어서 뉴욕 맨해튼에서 공연을 하는데 참 놀랍습니다. 지금 16년째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몇 일전에 제가 갔을 때도 보니까 아직도 ‘레 미제라블’을 하고 있습니다. 16년 동안 매일같이. 그래도 사람이 가득 찹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저도 어쩌다가 세 번을 보았습니다. 왜냐면 한 번은 ‘레 미제라블’ 한다고 그래서 갔고, 그 다음은 아무 생각도 없이 어떤 분이 절 만나서 “좋은 데 갑시다” 그래서 “갑시다” 그랬더니 거기 또 가요. “좋은 데 갑시다” 또 가요. 그래서 세 번. 안본 척 하고 보았습니다. 고맙다 그러고 보고 나왔습니다. 볼 때마다 큰 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야기 아닙니까. 아니 ‘레 미제라블’은 몰라도 ‘장발장’은 아실 것입니다. 배고파서, 오로지 배고파서 빵 하나 훔쳤는데 이 죄 때문에 그는 19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합니다. 19년 동안. 그 동안 인간의 복수 본능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점점 사나운 사람이 됩니다. 주먹이 얼마나 사나운지 그를 이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렇게 복수심을 불태우며 19년을 지내고 감옥에서 나옵니다. 자기를 감옥에 처넣은 그 형사, 꼭 죽이고야 말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습니다. 전과자가 되어서 하룻밤 쉴 곳도 없습니다. 어느 신부가 그를 영접해 주었는데 그 방에서 자다가 은잔이 그 곳에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훔쳐서 나옵니다. 저것을 생활의 밑천으로 삼으려고. 그러다가 바로 들켰습니다. 체포되어서 신부 앞에 나타났을 때에 신부는 말합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제가 준 선물입니다. 저 사람 도둑질 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이 은촛대도 주었는데 왜 이것은 안가지고 갔습니까? 이 은촛대도 같이 가져가지 않고”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팔면 은이라서 아마 200프랑은 족히 받을 것입니다. 그럴텐데 왜 이것은 안가지고 갔습니까?” 선물로 주었다고. 이 무조건적인 뜨거운 사랑이 이 장발장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이 용서와 자비가 이 극악한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한 평생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살 것이다’ 맹세하고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선하게 살려고 하는데 그게 어려웠던 것은 예전에 자기를 체포했던 형사가 끈질기게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과거가 계속 자신을 괴롭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피해가면서 착하게 선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 여러분, 참으로 사람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독일의 히틀러가 많은 유대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온 세상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때, 유명한 신학자 칼바르트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돌프 히틀러에게 주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고. ‘히틀러, 당신도 잊지 마세요. 당신을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신학자의 말입니다. 전쟁 직후에 나환자들이 많을 때, 그들을 돌보는 일들이 교회의 큰 사업이었습니다. 한 방문객이 선교사로 파송되어서 그 나환자들의 비참한 모습과 그 상처를 싸매고 있는 간호원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선한 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다가 너무너무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답니다. “나는 백만불 주어도 저런 일은 할 수가 없어”라고 했는데 간호원이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는 말이 “나도 못합니다” 그랬습니다. “당신만이 아니라 나도 이 일을 못합니다, 백만불을 준다 하더라도.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에 나는 기쁨으로 자랑스럽게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테레사 수녀의 알 것 같으면서 알기 어려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불쌍한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이 있기에 도울 수 있고 내가 사랑할 사람이 있기에 사랑할 수 있고 내가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에 내가 봉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이 기회가 그렇고 이 시간이 그렇고 이 관계가 그렇고. 가장 불쌍한 사람,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요. 이해가 갑니까?
여러분, 평화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본문 성경에 아주 귀한 해답을 주십니다. 말일에 있을 일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 산에 올라가자.”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자. 성전입니다. 성전 중심의 신앙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자.” 제가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요절이 있습니다. 시편 73편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편 73편 17절입니다. 이 세상에는 모순이 많습니다. 불의한 자도 많습니다.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선한 자는 안되고 악한 자는 잘되고 모순이고 부조리하고 고민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 결국을 알았나이다. 여러분, 번민이 있습니까? 교회에 찾아 나아와 기도하십시오. 어느 시간이냐고 묻지 마십시오. 사람의 문제로 사람과 변론을 벌이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조용히 무릎을 꿇어 보십시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잘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중심으로 우리의 생을 살아갈 때에 참 평화가 깃듭니다.
또한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말씀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말씀만이 구원의 능력이요 창조의 능력입니다. 말씀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세상을 바꿉니다. 전쟁을 쉬게 합니다. 말씀이 충만한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말씀이 고갈될 때에 어느 순간에 사람이 삐걱거립니다. 실의에 빠집니다. 절망합니다. 낙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십자가의 말씀으로 십자가의 도로 충만하게 될 때에 거기 구원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말하기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믿고 순종할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는 거기에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입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농기구를 만들게 되고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두려워할 자가 없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칼 매닝거(Menninger, Karl Augustus)라고 하는 유명한 심리학자의 이러한 결론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모든 정신적 질병의 근본적 치유책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고. 여러분, 이것을 인정하셔야 됩니다. 이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그 무거운 마음, 그 증오의 마음, 그 질투하는 마음, 이 악한 마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길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C.S.루이스의 유명한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십시다. “우리는 에로스에서 태어나고 스톨게에서 성장하고 필로스에서 성숙하고 아가페에서 완성된다”고. 왜 우리의 마음이 문제가 되느냐? 그것은 사랑이 아니오. 그것은 에로스요. 유치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으로 돌아갈 때에 십자가의 사랑으로 돌아갈 때에 나도 살고 저도 삽니다. 전쟁의 이유는 내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가끔 저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제가 북한에 자주 출입한다고 해서 자연히 제게 물어볼 때가 많아요. 어떤 강연을 하고 나오는데 나이 많은 장로님 한 분이 저를 만나서 정면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다른 것은 다 좋은데 공산당은 안됩니다.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 그러셔서야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은 젊어서 몰라요.” 제 나이를 모르시는가 봐요. “젊어서 모르죠. 그런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래요? 제가 이야기할까요. 저는 제 앞에서 아버님이 총살을 당했습니다. 그것을 제가 지켜보았습니다. 나 자신도 광산에 끌려가서 무진한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북한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딱 서서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눈물을 줄줄 흘리시면서 “목사님 그래도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럼요, 이것만이 제가 사는 길이니까요. 그리고 저를 살리는 길입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언제 통일이 되나요?” 저는 대답합니다. “그것은 우리 할 탓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통일이 없는데 어떻게 통일을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저들을 사랑하고 저들이 우리를 사랑하게 될 때에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에 그 다음에 통일이 있는 것이지 왔다갔다한다고 통일이 되나요. 회담 백날 해도 안됩니다. 그것은 성경적 진리가 아닙니다. 마음에서부터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작년에 있었던 9.11 사건. 뉴욕 한가운데 있는 쌍둥이 빌딩이 터져나가는데 바로 지난 몇 일 전에 바로 그 자리를 지나갔습니다. 두 번 지나가면서 보니까 참 기가 막히더라구요. 다 치웠어요 지금. 그 넓은 땅. 그들의 마음의 상처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평화는 힘으로는 안돼! 폭격으로는 안돼! 무기로써는 절대로 평화를 얻을 수가 없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때려부숴도 안됩니다. 다 죽여도 안됩니다. 항복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미움은 미움을 낳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오직 사랑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사랑만이 이것을 가능케 하고 십자가의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나 자신의 평화를 이루게 만듭니다. 강퍅한 마음을 녹입니다. 전쟁을 쉬게 합니다. 아가페의 사랑, 엄청난 사랑만이 전쟁을 쉬게 합니다. 통일을 이루게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늘 십자가를 쳐다봅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이 얼마나 놀라운 지를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만 평화가 있고 거기에만 통일이 있고 참 생명의 길이 있음을 알고 있고 늘 고백하면서도, 아직도 우리 마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고 미움이 있고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복수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마음을 중생케 하사 사랑하는 자의 마음을 주시고 원수를 사랑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을 베풀게 하사 우리도 참 평화에 있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참 평화를 누리게도 하시고 복음 안에 통일하는 밝은 평화의 미래를 창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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