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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1.04.01
제 목 :예수의 결심
본 문 :누가복음 9 : 51 ∼ 56
‘Thinking’이라고 하는, 즉 ‘사색’이라고 하는 책의 저자인 한나 아렌트 여사는 그가 만나서 상담했던 많은 범죄자들과의 그런 대화와 그 경험을 통해서 이러한 결론 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본래적인 악함 의 원인이 있기보다는 애매함과 우유 부단함에 기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사람은 본래 다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 깊은 곳에 착함과 진실함과 선함이 있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선함을 좇지 못하고 악한 욕망, 악한 어떤 요구 앞 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거나 또 우유 부단함으로 해서 고만 악에 끌려서 악을 거절하지 못하고 어느 사이에 자유를 빼앗기게 되고 악한 사람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올시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러한 교훈입니다.
코카콜라 창업자인 아사 D. 캔들러라고 하는 사람은 본래 알코올중독자였습 니다. 알코올, 이 술에 중독이 되어서 술을 안 먹으면 살 수 없고 술을 먹지 아니하 면 정신이 들지 않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수용소에 끌려가서 오랫동안 여러 차례 고 생을 했건만은 술에 대한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갔습니다만 은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들려오는 강한 마음속에 있는 음성을 들을 수 가 있었습니다. ‘내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거절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속에 서 가지는 이 악한 욕구, 이 욕망을 거절해야만 내가 자유인이 될 수 있다.’ 그는 깊 이 깨닫고 집에 돌아가 아내의 손목을 잡고 자기가 깨달은 바를 고백하고 같이 울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자유인으로 시작합니다. 술의 노예가 되었던 사람이 이제는 자유인으로 그 양심도 그 영혼도 모든 악한 욕망으로부 터 벗어난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바 치면서 코카콜라라고 하는 큰 기업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김정일 교수께서는 그의 책 중에서 말합니다. 거절해야 할 일에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부러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막연 한 적개심을 가지고 산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거절해야될 일입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가 놓고는 자기를 망쳐버렸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 해서 그 무언가에 대해서 그는 언제나 적개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자기가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자기가 거절하지 못한데 대한 확실한 책 임을 지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를 이렇게 속박한 그 무엇에 대해서 적개심을 가지고 산 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스트레스라는 것이에요. 제가 만들어 놓고 제가 빠져놓고는 딴소리하는 거예요. 가끔 보니까 그렇습디다. 제가 연예하고, 제가 죽느니 사느니 하고, 그래서 결혼해 놓고는 그 다음에 “너 때문에 나 망쳤다” 그러더라구요. 꼭 이 꼴이라는 거지요. 인생 파멸을 사는 사람마다 꼭 같은 모양으로 살아갑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그런고로 인생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가장 아름답고 가 장 싱싱하게 보이는 거예요. 하고싶은 일. 무슨 말입니까?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사랑하며 사는 것이죠. 자유인으로 사는 거죠. 그 사람이 가장 싱싱한 것이에요.
자 그런데, 사람을 이렇게 애매하게 만드는 이유가 뭡니까? 왜 초라하게 되는 겁니까? 이에 대하여 리처드 포스터는 그의 저서에서 말합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말입니다. 사람을 애매하게 만드는 것은 노이즈네스(Noisiness) , 소음이라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날 때부터 시작해서 뭘 이렇게 많이 들어요. 라디오, 텔레비전, 뭐 컴퓨터…… 뭐 이 소문 저 소문, 심지어는 이 신문까지도. 요 새 신문에 부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정보 많은 소리를 듣는데, 이것이 사람을 그만 미치게 만들어요. 자기 성찰, 침묵과 고요를 잃어버립니다. 여러분 지나가는 말로 말씀드립니다만은 주일날 하루는 신문보지 마세요. 웬만하면 전화하지도 말고 전화 받지도 마세요. 좀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좀 귀가 조용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소음에 시달리니까 이 그만 내적 존재가 미쳐버리고 마는 거예요.
또 하나는 비즈니스(Business) 올시다. 너무 바쁘게 산다는 것이죠. 아주 빨리 되어야만 효율성이 있다는 철학 속에서 서두르고 있습니다. 시테크를 논하니까 요. 시간이 지나면 소용없어요. 얼마나 빠르냐에 따라서 속도감과 생산이 정비례한 다 해서 우리는 빠르게 빠르게 빠르게 서두르다 보니까 생각하고 달리는 게 아니라 달 리면서 생각하니, 그게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가 있어야지요.
또 하나는 크라우드(Crowd)올시다. 군중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나를 어떻 게 생각할까, 여기에 너무 신경을 많이 씁니다. 우리는 물건을 팔고 삽니다. 그럴 때에 내가 만든 물건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해 줄까? 다른 사람들의 기호, 선 호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이러다 보니까 어느 사이에 사람도 못되게 되어있 어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나 여기에 그만 끌려가기 시작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 기준에 나를 떠맡긴지 오래됐어요. 그대로 인생관이 표류하게 되었어 요. 자기 상실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입니다. 현대인에 대한 진단이올시다.
오늘 분문에 나타난 말씀은 아주 짧은 내용입니다만은 굉장히 중요한, 성경 한 중심부에 있는 핵심적인 메세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 기로 굳게 결심하셨다, 이 사실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만큼이나 그 가진 뜻이 깊고 귀중한 핵심적 복음의 말씀이올시다. 여러분, 십자가 사건, 이걸 어떻게 보느냐가 중 요합니다. 십자가, 예수께서 달리신 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걸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구원이 있기도 하고 사망이 있기도 하고 기독교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 다. 문선명 집단, 이제는 자기 자체가 우리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선포했으니까 뭐 그 대로 얼마든지 비판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도 성경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를 안 믿 습니다. 왜? 예수의 십자가를 저들은 무능의 소치로 봅니다. 실수한 것으로 봅니다 .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그만 음모에 걸려서 그만 예수는 끌려가서 죽었다 이거예요. 이렇게 보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 자가를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는데 그것은 우연한 사건 이 아니었습니다. 일시적 엑시던트(Accident), 돌발사건이 아니란 말이에요. 성경은 아주 전체성경을 통해서 말씀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예언, 그리고 성취. 성경이 말 씀하는데는 우연사란 없어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경륜 속에서 오래 전에 예언하셨 어요. 예언하시고 성취하고, 예언하시고 성취되고. 우연은 없다!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필연적 사건이 있을 뿐이에요. 십자가는 오래 전에 예언하신 사건이 여기서 성 취된 것이다.
또 하나는 무지가 아니라는 거죠. 예수님이 몰라서 그만 어느 사이에 그 음모에 말려들어서 십자가를 졌느냐? 뜻도 모르게 애매하게 억울하게 죽었느냐? 그 게 아니라는 것이죠. 또 하나는 무능의 소치냐, 피할 수 없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겁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려오시다가 체포되는 시간에 하신 말씀 이 있습니다. 열두 영도 더되는 천사를 보내서 저 원수들을 다 진멸할 수 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이 일이 이루리라” 예언하신 말씀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여러분, 무능 해서 십자가를 진 겁니까? 성경은 누누이 증거합니다.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소리 를 지르십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옵니다. 그 능력을 가진 예수, 그 많은 능력을 가 지신 예수가 조용하게 십자가에 죽어요. 그래 능력이 없어서 죽은 겁니까? 이 사실 을 분명히 알아야 되요. 성경이 강하게 증거 하는 것은 바로 그거예요. 누가 병났고 , 장님이 눈을 떴고 문둥이가 깨끗하고, 그리 중요한 얘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십자 가를 설명하는 겁니다. 그 같은 능력을 가지신 분이 이렇게 말없이 십자가에 죽으셨 다 그거예요. 자, 십자가 사건은 그런고로 선택적이요, 자발적이요, 결단적이었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건은 예수님의 생애에 라스트 스테이지, 마지막 단계 를 설명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병도 고치고 말씀도 하시고 돌아다니면서 역사하시 고 이랬지만은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저 앞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루 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출발합니다. 정면 충돌하는 겁니다. 정면 대결하는 겁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십니다. 이걸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 오늘 성경 말씀은 “굳게 결심하시고”라고 되어있 는데요, ‘프로소폰 에스테리센’이라는 말이 아주 중요한 말이에요. ‘프로소폰’이라는 말이 ‘얼굴’이라는 말이고, ‘에스테리센’, ‘굳다’는 것이에요. 원문대로는 예루살렘 을 바라보면서 얼굴을 굳게 했어요. 그 마음의 결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 다. 예루살렘 쪽을 향해서 마음을 굳게 하시고. 자 이제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충분히 알만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저 앞에 간사한 무리들이 있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결정을 다 해놓고 올라오기만 해라. 기다리고 있습 니다. 다 아시면서 선택적으로 자발적으로 그리로 갑니다.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했 어요.
또 하나는 ‘승천할 기약이 차가매’ 엄청난 의미가 있는 말씀이올시다. 자 보세요. 예수님의 생애가 있고 십자가가 있고 부활이 있고 승천이 있는 겁니다. 이 세단계를 거쳐가는 겁니다. 십자가, 부활, 그리고 승천입니다. 그런데 승천할 기약 이 차가매, 이제 십자가의 길로 갑니다. 영광의 아침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로 갑니 다.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 부활을 통해서 승천이올시다. 저 앞을 바라보면서 오늘 골고다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세요. 예수님의 본래성이 그렇고 주님의 뜻 이 그렇고 하나님의 경륜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더욱 깊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언을 기다렸습니다. 이에 주님은 예언을 자기 자신을 통해 성취하려고 하셨습니다. 가끔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제가 북한에 오고 간다고 해서 가끔 물어 봐요. “목사님 북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전문가일수는 없고 , 북한을 늘 생각하고, 그저 기도하고 하는 그런 사람이지요.” “그럼 한가지 물어봅 시다. 목사님, 언제 통일이 될까요?” 꼭 그걸 물어봐요. 내가 무슨 점치는 사람인 줄 아는가봐요. “언제 통일될까요?” 저는 대답합니다.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합니 다. “우리 하기 탓입니다. 누군가가 해주길 바라지 마세요. 당신의 마음속에 통일 이 있냐고 묻고싶어요.” 이게 중요한 거예요.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누구를 미워하 고 있어요. 누가 망하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이러고 되겠어요? 당신하기 탓이요. 천지가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지고 뭘 바라고 있는 겁니까? 나라가 달라지고요. 당신 하기 탓이요. 나 하나가 오늘 이 엄청난 일을 위해서 해야할 일이 있어요. 예수님은 예언을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그러나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어요. 이제는 나 자신의 생애 속에서 예언을 성취시키시는 거예요. Here, Now, to me. 지금 여기서 이 현재 적 사건 속에서 내가 예언을 성취시키는 것이죠. 예언을 현실화했습니다. 놀라운 진 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이후로는 마음이 변할 것 없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너무 오래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끝도 없습니다. 헬라어의 유명한 말이 있어요. ‘에포케’라는 말이 있어요. 판단 중지. 그건 꼭 필요합니다. 이럴까 저럴까, 저럴까 이럴까… 끝도 없는 생각 그만하세요, 이제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 생각하고 앉았노? 이제는 결정을 해야지.
일본사람들의 격언에 재미있는 말이 있어요. “만날까 말까 한 사람을 만나 지 말고, 먹을까 말까한 음식은 먹지를 말고, 갈까 말까 하는 길은 가지를 마라. 죽 을까 말까 할 땐, 죽어라” 그랬어요. 이거 아주 귀한 말씀이에요. 중요한 결정이 있 어야 해요. “굳게 결심하시고”
그 다음에 오늘 본문에 보면 사마리아로 가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하니까 유대 사람을 미워하는 사마 리아 사람들이 이 못마땅해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어요. 아, 예수님이 유대 나라 왕이 되려고 가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십자가 지러 가는데. 여기에 오해가 있어요. 그러나 나무랄 것 없어요. 오해 하던 말던, 무슨 비난이 있 던 나는 내 길을 어엿이 가는 것이죠. 노트르담 대학교수 몰튼 캘시라고 하는 분이 How Can We Love One Another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물질주의 시대를 사는 인간의 가치관을 몇 가지로 분석을 했습니다. 첫째, 파워게임을 하며 사는 사람들, 권력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생각해서 합법적으로 때로는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얻으려고 몸부림치며 파워게임에 온 생을 바치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 돈버는 것도 권력 때문에, 권력만이 나의 생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생각해서 죽기살기로 권력을 찾아 헤매지만은 여러분, 권력 찾아간 사람들 끝에 보세요. 다 패자로 끝납니다. 승자는 없습니다. 오직 패자예요.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 어느 국회의원이 세상을 떠나서 장례식을 하러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손님이 두 사람 밖에 없어요. 우리 교인들 간 사람 몇 사람 외에는 조문객이 둘밖에 없더라고요. 정치하는 사람, 무상하더만요. 그렇습니다. 이건 공연히 으시대는 거지 마지막이 다 비참합니다. 또, 두 번째 사람 은 쾌락주의요. 유희적 쾌락을 즐겨요. 이기적으로 나에게는 쾌락만이 남는다. 마 지막에는 허무하고 비참해집니다. 또 하나의 사람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만사를 비판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살지만은 결국엔 절망하게 됩니다. 남는 것이 뭐겠습니까? 믿거나 말거나 알거나 모르거나 이것은 진리입니다. 오직 사랑을 위해 사는 것, 그것만이 바로 사는 길이에요. 전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모 대학병원에 간병원으로 사는 사람이 있어요. 자녀도 있어요. 그러나 이제 다 크고 할 일이 없어요. 내가 뭘 할까 하다가 죽어 가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그저 간병원으로 돈 몇 푼 받고 수고를 했어요. 처음에는 돈 받으려고 갔죠. 그러나 거기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보다 보니까 여기에 취미가 붙었어요. 너무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웬 노인이 와서 일년동안을 있는데 간병원으로 정성을 다했어요. 물론 돈 생각 없어요. 자녀들도 다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안돌아봐요. ‘내가 돌아보지.’ 정성을 다했어요. 마지막 세상 떠날 때, 엄청난 돈을 이 사람에게 유산으로 줘 버렸어요. 결혼신고 해버렸어요. 그리고 유산을 주었어요. 그러나 이 돈을 받고도 다시 간병원을 합니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어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사랑을 베푸는 것이 얼마나 자유인이요,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는 수억 원의 유산을 받아놓고도 여전히 간병원으로 들어갑니다. 삶이 어디있는 겁니까? 얼마나 더 살면 좋을 것이겠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입니까?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에도 노예가 되지 마세요. 무엇에 끌릴 것 없어요. 결단이 있는 자는 직선거리를 갑니다. 전후좌우 돌아볼 것이 없어요. 하나님의 경륜을 알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자유롭습니다. 골로새서 1장 25절에서 사 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내가 사도가 되었노라. 내게 주신 경륜,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내가 있음을 알았어요. 나의 존재를 알았어요. 그렇게 살았 어요. 예수는 요한복음 18장 11절에서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 지 아니하겠느냐?”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십자가요, 이제 전후좌우를 볼 필요가 없 어요. 가야바가 어떻든, 뭐 가롯유다가 배반을 하든 말든, 빌라도가 뭐라고 하든, 로 마 군인이 죽이든 살리든… 상관없어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거예요. 십자가예 요. 이렇게 믿고, 이렇게 선택하고, 이렇게 결정하고 사는 사람 흔들림이 없어요. 자유합니다.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늘 행복하게 삽니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무 엇에 끌려가면서 노예 생활하는 것처럼 비참한 게 없어요. 굳게 결심하고 선택하고 그리고 남은 생을 사는 거예요. 이러한 자유함이 성도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 랍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끌려가며 불평하며 원망하며 그 렇게 살았습니다. 원하오니 이제 은총을 더하사 주께서 저 앞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 보며 굳게 결심하시고 줄기차게 골고다로 향했던 것처럼 하나님 우리에게도 확실한 은 혜를 주시사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온전히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또 그 를 위하여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결단이 있고 선택이 있고 자유가 있는 그런 생 을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