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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 1 ~ 4

곽선희 목사

2002.10.13

날 짜 :2002.10.13
제 목 :위엣 것을 찾으라
본 문 :골로새서 3장 1절 ∼ 4절

중국의 석학이며 하버드 대학교수로 한평생을 사셨던 임어당 교수님을 여러분이 친숙히 아실 것입니다. 그가 남긴 많은 저서 중에 제가 대학 다닐 때에 아주 탐독해서 읽었던 그런 책 중에 “속 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기억이지만 다시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중국의 장자라고 하는 분이 조룽이라고 하는 지방에서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날개가 무려 일곱척이나 되는 큰 새 한 마리가 머리위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나뭇가지에 앉았습니다. 그 숲에 앉는 것을 보고 ‘옳지, 저 새를 한 번 구경해야겠다’ 하고 가까이 가도 새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 새를 잡아야겠다’ 생각을 해서 장자는 활에 화살을 먹인 후에 가까이 가까이 갔습니다만, 그 새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하고 보았더니 이 큰 새가 바로 눈앞에 있는 버마제비라고 하는 먹이를 먹으려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더랍니다. 또 버마제비를 보니까 버마제비가 꼼짝을 안하고 있어요, 도망가지 않고. 버마제비는 또 앞에 있는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며 거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 짐승들을 보았습니다. 이 때에 밤나무 숲 주인이 장자가 도둑인줄 알고 오해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도둑이야!”하고. 그래서 모든 일이 다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탐심에 눈이 어두워 탐심군상의 모습이라고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무엇을 보고 사느냐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에 몰두하고 있느냐, 그것이 당신의 존재요 삶의 의미요 또 당신의 운명입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의미를 아주 심각하게 또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러면서도 신비롭고 또한 실재적인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네 가지 속성을 말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둘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입었다. 셋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감추어져 있다. 넷째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오실 때에 함께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네 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고, 함께. 그리스도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그리스도를 보고야 나를 볼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만 내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이런 것들을 오늘 여기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수식어가 먼저 나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하니, 못박혀 죽었다는 말의 뜻이 좀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헬라어나 영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동사가 먼저입니다. 그래서 ‘I am crucified, 내가 죽었다’ 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는 이미 죽었다. 여러분, 앞으로 죽는 것이 아니고 벌써 죽었습니다. 오늘 죽는 것이 아니라 어제 죽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벤허라고 하는 영화를 다들 보셨을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어떤 분은 이 소설을 아주 극찬해서 뭐 성경 다음 가는 것이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영화도 아주 잘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한다고 했더니 미국에 있는 제 친구가 비디오 테이프를 하나 보내주어서 지금도 가지고 있고 가끔 다시 봅니다. 아주 훌륭한 작품입니다. 벤허라는 사람이 한평생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는 남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대항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검을 쓰지 않습니다. 그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끝까지 사랑으로 이깁니다.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마지막 장면에 귀한 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검을 쓰지 않고 그렇게 이길 수 있었느냐? 그는 말합니다. “내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바로 그 현장에 있었노라. 예수님께서 그 억울한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큰 소리로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큰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손에서 검이 떠나가는 것을 느꼈노라.” 그리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오늘 집으로 가는 길에 비디오 가게에 가서 벤허를 빌려다 다시 한 번 보십시오. 감동이 되는 말이 많고 순간 순간에 큰 감동이 올 것입니다. 자, “나는 이미 죽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옛사람은 죽어버렸습니다. 한국적인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황해도 신천이라는 곳에 가면 거기에 김익두 목사님이 목회를 하시다가 서부교회에서 순교하셨는데 그 분은 신천장에 유명한 불량배였습니다. 요새말로 깡패였습니다. 아주 소문난 깡패, 그가 예수를 믿고 확 거듭나서 이제 전도를 합니다. 급해서 아직 신앙에 깊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전도부터 합니다. 모든 사람이 “저 사람이 엊그제만 해도 깡패였는데” 하니 대답합니다. “옛날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옛날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예수를 믿으세요”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아는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다가 “예수를 믿으세요” 하니까 “어디 죽었나 살았나 보자”하고 설거지하던 물을 얼굴에다 확 끼얹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얼굴에 궂은 것이 다 묻었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이 “내가 죽었으니 네가 살지”라고 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만일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런 일을 당했으면 죽였죠. 내가 죽었으니 네가 살지 않느냐, 아주 참 멋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얼마나 죽었습니까? 근심, 걱정, 시기, 질투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아무 일도 아닙니다. 덜 죽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깨끗이 죽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죽어야 될만큼 못 죽었습니다. 철저하게 죽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혹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됩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는 날 아침에 나도 부활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삶의 의미도 내 삶의 목적도 내 가치관도 내 행복도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기쁨으로 살고 그리스도가 기뻐하는 것만 내가 기뻐할 수 있고, 그리스도가 사랑하는 자를 내가 사랑하는 그러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사는 것, 이것을 바로 중생이라고 합니다. 거듭난다고 하죠. 그리스도로 태어났습니다. 나로서 죽고 그리스도로 살고 율법 앞에서 죽고 성령으로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의미요법의 창시자라고 하는 빅터 에밀 프랭클이라고 하는 심리학자요 교수인 그의 저서는 유명합니다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는 세 가지를 ‘가치’라는 포괄적인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미로 산다. 사람은 의미로 산다는 것입니다. 첫째, 창조적 의미로 사는 것입니다. 無에서 有가 창조입니다. 과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신기원적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상상하고,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창조적 가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적 가치를 인식하고 창조적 사고를 하고 창조적 사역에 우리의 마음과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창조적 사역에. 과거에 매이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 때문도 아닙니다. 완전히 창조적 역사에 내 몸과 마음과 시간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우리 교회에서 지금 힘쓰는 것인 북한 평양에 과학기술 대학을 세우고 있는데 지금 공정이 시작되어서 500명의 인부가 그곳에서 지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 이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었습니까? 이것은 온 세계가 다 놀라는 일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허가가 났으며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그렇게 말합니다. 그 이유가 하나있습니다. 이것은 창조적인 것입니다. 이런 창조적 역사에 이것을 받아들이며 여기에 생각과 뜻을 바칠 때에 창조적 가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경험적 가치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그 경험 속에서 새로운 것을 깨닫습니다. 버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좋은 일 나쁜 일 묻지 마십시오.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깨닫고 새로운 일을 창조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경험적 가치, 경험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 속에 의미가 있습니다. 또 그런가 하면 태도적 가치,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절대로 소극적으로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부정적으로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긍정적 자세로 임합니다. 그럴 때에 태도적 가치가 창출됩니다. 때로는 역설적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많은 고난 속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많은 환난과 고통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깁니다. 아주 역설적입니다. 썩어지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없어집니다만 거기서 생명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바른 창조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십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주 신비로운 표현입니다. 거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 ‘위를 보라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너의 생명이 감추어져 있느니라.’ 지금 난 땅에 살지만 내 생명은 거기에 있습니다. 벌써 감추어져 있습니다.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닙니다만은 이 시대를 살면서 그저 사실이니까 사실대로 이해할 수 밖에요. 옛날 사람들은 얼굴도 못보고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중매하고 뭐 이러면 “얼굴도 안보고 결혼하나?” 그래서 소위 현대인이라고 해서 옛날 사람들이 얼굴을 보고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사귀어보지도 않나?” 그래서 사귀어 보고 결혼했지요. 사귀어보고 데이트하고, 사귀어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그렇게 되었는데, 요즘 미국이나 구라파에서는 그것 가지고는 안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살아보지도 않고 결혼을 하는가?” 말이 됩니까 안됩니까? 한참 가서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튼 살아 보고 해야하겠다 이겁니다. 그래서 동거라는 것이 있고 결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거는 몇 년을 해도 그것은 동거입니다. 결혼해야 결혼입니다. 도대체, 아마 이해가 안되겠지만 이해해야 합니다. 현대를 살려면 머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통계에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사람의 이혼율이 뭐 40%라 고 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통계를 낼 수가 없습니다. 저 사람들은 실컷 살아보고 하는 결혼이고 우리는 결혼하고 살다보니 얼마든지 헤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얘기가 좀 다르지 않습니까? 스웨덴 사람들은 결혼하는 것을 보면 애를 몇 데리고 합니다.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애를 줄렁줄렁 데리고 결혼을 하거든요. 그런데 왜 그래도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중요합니다. 결혼식이 중요해요.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또 뿐만 아니라 결혼식하고 혼인 신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혼인신고를 하는 날, 운명이 하나로 엮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결혼하고 만약 내일 이혼하게 되면 그 남편의 재산을 딱 반으로 나눕니다. 꼼짝 못하고. 동거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조심해야합니다. 결혼했다가 헤어지면 재산을 딱 반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게 있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는 학생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부모님들 생각에 ‘그냥 보내서는 안되겠는데 복잡하고 시험도 많으니까 결혼을 시켜서 보내야 하겠는데’ 그런데 아직 결혼은 안되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이제 결혼을 하기로 하고 혼인신고부터 먼저 합니다. 왜냐하면 남자가 지금 유학생으로서 준비를 하고 가는 길이기 때문에 같이 가려면 부득불 혼인 신고를 해야 합니다. 아니면 관광비자로 가게되니까 가서 쫓겨나거든요. 그래서 부득불 결혼을 안하고도 혼인 신고를 먼저 합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우리가 천당 가는 것이 그와 같다는 말입니다. 혼인신고부터 먼저 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와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벌써 거기에 가있습니다. 예수님의 신부로 천국에 딱 가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좌석이 거기에 예약되어있습니다. 아무데서라도 꾸벅하면 이미 그리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이미 신고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라, 그리스도가 보일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내 생명이 감추어져 있느니라. 아주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지금 여기서 순례자로 잠깐 살아가고 있는데, 아무 때 가도 좋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가도 좋습니다. 가면, 그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벌써 혼인 신고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이 거기에 감추어져 있느니라. 이 얼마나 오묘한 말씀입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에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얼마나 신비롭고 얼마나 실재적인 말씀입니까? 보십시오. 여러분, 자동차를 운전하십니까?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꼭 앞을 보아야 됩니다. 제가 40년 동안 운전을 했는데, 전 차 운전하는 것을 즐깁니다만 자 이제 여기서 운전해서 어떤 때에는 경주까지 논스톱으로 갑니다. 이렇게 운전을 하려면 꼭 멀리 보아야 됩니다. 앞만 보아야 합니다. 절대 뒤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딴 생각을 해서도 안됩니다. 생각까지도 오직 운전만. 그리고 300m앞을 보아야합니다. 왜? 저 앞에 있는 것이 순간 내 앞에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곧 다가올 것이니까, 반드시 내 앞에 올 것이니까. 그러므로 멀리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쓸데없는 생각도 하지 마시고 쓸데없는 말도 하지 마시고 오로지 앞만 보아야 됩니다. 그와 같이 오늘 성경 말씀은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라,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아주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앞에 있는 생명만 바라보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근자에 있었던 이야기인데 실화입니다. 미국의 한 중환자 병동에 심한 화상을 입은 소년 하나가 입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얼굴에도 다 붕대를 감고 그저 숨만 쉬게 하고 이렇게 되었는데, 불쌍합니다. 이런 중환자실에는 소위 자원봉사자는 못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자원봉사자 중에 대학생 하나가 철따구니가 없어서 금기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침대에 써있는 기록카드를 보니까 이 사람이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렇게 끙끙 앓고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괴로울까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서 매일 같이 그 중학교 2학년 교과서를 들고 가서 귓가에 대고 읽어주었습니다. 책을 읽어 주고 영어 문법을 읽어 주고 가르쳐 주고. 그러니까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아이가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을 읽어주는 것을 보니 내가 나을 수 있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아이는 죽을 줄 알았는데 나을 뿐 아니라 기적적으로 빨리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붕대를 푸는 날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을 수 있었느냐? 이 아이의 말이 그 형님이 책을 읽어 줄 때에 나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생각을 했고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 노는 생각을 했고, 나는 나아서 이렇게 공부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빨리 나을 수 있었습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이미 저기 위에 가 있어야 합니다. 땅엣 것을 사랑하면 땅에 있는 것도 잃어버리고 하늘에 있는 것도 잃어버립니다. 하늘을 따르면, 하늘도 얻고 땅도 얻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그 안에 너의 생명이 감추어져 있느니라. 이것을 확인하고 그리고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살며 세상에 끌리고 땅에 살며 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저희들에게 위엣 것을 찾으라고 말씀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하신 말씀대로 항상 위를 보며 스데반처럼 살게 하시고, 천사의 얼굴을 하고 살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며 살게 하시고, 주님과 나 사이에 깨끗한 만남이 있어서 그로부터 오는 생명력과 그 소망과 그 놀라운 능력 가운데 오늘도 승리하는 하루하루의 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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