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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23: 32 ~ 38

곽선희 목사

2003.03.30

날 짜 : 2003.03.30
제 목 : 자기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본 문 : 누가복음 23 : 32 ∼ 38

성도 여러분 아마도 블라디미르 레닌을 모르는 분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레닌은 구소련 연방을 창건한 아주 광신적 공산주의자 입니다.그가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철학과 정치를 넘어서 그에게는 신념이요 종교요 신앙이었습니다. 반드시 이 공산주의를 통해서만, 세계는 하나 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가 올 수 있다고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철저한 공산주의 신봉자였습니다. 러시아 혁명을 함께 했던 그의 친구, 동료가 레닌을 평가할 때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레닌은 혁명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또 공산주의 이야기. 혁명을 먹고, 혁명을 마시고 살았다. 아마도 꿈을 꾸어도 공산주의 혁명만 꿈을 꾸었을 것이다.” 라고 그의 친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온 정력을 다했습니다. 레닌이 숨어있으면서 저술하던, 그 움막집을 제가 직접 방문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 공산주의, 이것을 신념으로 하고, 온 생, 온 정성, 온 생명을 다 바쳤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그는 역사를 전진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후퇴시켰습니다. 사람을 잘 살게 해주지 못하고, 사람을 망가뜨렸습니다. 그는 하나의 이념을 위해서 일년에 100만 명씩을 숙청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100만 명씩을 숙청을 하면서 이상적 공산주의 사회를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그는 그렇게 갔습니다. 그는 무산대중을 위하기로, 그들에게 행복을 약속했지만, 무산대중을 굶어 죽였습니다. 가난한 자가 없는 사회를 만든다고 호통을 쳤지만, 온통 러시아를 거지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부르주아를 숙청하고 평등의 나라를 이룬다고 했지만, 그는 결국 독재자 스탈린을 자기가 세우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역사에 없는 독재사회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는 스스로 속았습니다. 그는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고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세상에 역사적으로 불행하고 역사적으로 바보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요? 그는 진리를 몰랐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9절에 보면, 가야바라고 하는 대제사장이 공의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한사람이 죽어서 온 민족이 편할 수 있다면, 죽어야지, 죽여야지, 그가 선한가, 의로운가, 불의한가 물어볼 것이 없다. 온 민족이 편할 수 있다면 시끄러운 사람은 없애버려야 한다. 가장 똑똑한 것처럼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자기는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했습니까? 가야바는 가장 어리석고 가장 미련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만이 무지한 사람이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무식한 사람입니다. 더 불쌍한 사람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잘못된 지식에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구제받을 수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지웠습니다. 예수를 십자가 지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가야바입니다. 자기는 가장 똑똑하다고,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고 큰 소리쳤지만, 그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하면서 뭐라고 합니까? 비웃으면서, 진리가 무엇이냐? 나는 지금 재판을 하고 있고, 너는 지금 죄수로 여기에 있는데, 진리가 무엇이냐? 자기가 진리인 것처럼, 힘이 진리요. 권력이 진리인 것처럼 큰소리를 쳤지만, 빌라도 역시 가장 불쌍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역사에 남고 맙니다. 자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리고 밑에서 이렇게 큰소리로 조소를 합니다. “너 자신을 구원하라.” 소리 소리를 지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맨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아버지여 이들의 죄를 사하소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 말씀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아버지여 이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어찌 이 엄청난 메시지를 우리가 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벤 허’라고 하는 영화를 여러분이 보셨을 것입니다. 소설도 유명합니다. 거기에 보면, 벤 허는 사랑의 사람입니다. 끝까지 검을 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난을 당하고, 그렇게 억울함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가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미워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무력으로 대항하지를 않습니다. 오로지 사랑으로 승리합니다. 이에 대해서 벤 허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왜 그랬냐구요? “내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 바로 발밑에 있었노라. 그 십자가로 돌아가시는 예수께서 아버지여 이죄를 사하시옵소서라고 하는 그 말씀이 내 가슴을 찡하고 와 닿는 순간 내 검에서 검이 떠나가는 것을 느꼈노라.” 그 후로, 그는 절대로 검을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승리합니다. 이것이 벤 허 입니다. 이 벤 허의 작품을 극구 극찬하는 사람은 성경다음으로 가는 책이라고까지 이야기 합니다. 너무나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자 보십시오. 저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왜?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 똑똑한 사람인데 왜 몰랐습니까? 저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왜 모르게 되었습니다. 모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2절에 보면, 예수님은 감람산 언덕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았거니와 너의 눈에 숨겨졌도다. 숨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불신앙으로, 그들이 반항으로, 그들이 잘못가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눈이 숨겨졌습니다. 어두워졌습니다. 총명이 흐려졌습니다.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았을 뻔 했거니와 너의 눈에 숨겨졌도다. 숨겨졌기 때문에 알 수 없었습니다. 또한, 호세아 4장 6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너희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희를 버려, 제사장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리라. 지식을 버렸다고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 이미 가지고 있는 양심, 이미 가지고 있는 정직을 버렸습니다. 믿음을 버렸기 때문에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지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종말적으로 나타나고 경제적으로 나타나고, 육체적으로 병들고 세상이 망가지고 정치적으로 심판하시지만, 이 모든 것 이전에 영적으로 심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무지입니다. 어리석은 무지입니다. 총명이 흐려집니다. 이성이 그만, 제 구실을 못합니다. 모르게 됩니다. 모르게 되면서 교만해집니다. 이것이 영적인 심판입니다. 그리고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무지가 심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또 한 가지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무엇을 모른다는 것입니까? 참 원인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내가 고난을 당합니다. 원인을 모릅니다. 여러분 혹 운동하십니까?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한 번 잘못 될 때마다 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생각하고 고쳐가지고 그 다음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모른다면, 영영구제불능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어지면 원인을 모릅니다. 이 목사가 되면, 별 이야기를 다 듣게 됩니다만, 어떤 아주머니가 제게 와서 이야기를 하는 대요, 시종일관, 자기를 중매해주신 목사님을 원망했습니다. 중매 잘못해줘서 일생동안 자신이 고생을 한다고, 그 분이 목사님 조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원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원인이 목사님에게 있는 것입니까? 왜? 자신에게 있는 것을 모릅니까? 꼭, 원인을 남에게 돌리는 사람 그것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원인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못사는 것도 남?때문이고, 잘못된 것도 남 때문이고, 만사가 다 남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부모도 하나님도 다 원망해 버립니다. 원인을, 참 원인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 유명한 우상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어리석어 지고 말았다. 첫째가 무엇인가 하며, 극장의 우상이요. 향락주의 입니다. 향락에 빠지는 사람은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잘못된 향락에 빠지면, 어리석어집니다. 또 하나는 시장의 우상입니다. 시장성을 생각합니다. 항상 손익관계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교인하고 악수를 할 때에도 이 사람하고 악수를 해두면, 내가 장사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안될까? 하고 계산을 합니다. 모든 일에서, 심지어는 아들딸을 장가보내고 시집을 보낼 때에도 돈부터 계산합니다. 어두워졌습니다. 결국 망가지는 것입니다. 어리석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장이라고 하는 우상, 돈이라고 하는 우상에 빠지면, 제정신 못 차립니다. 또 하나, 동굴의 우상입니다. 자기 경험. 자기 철학, 자기가 가진 자기 집착. 여기에 빠져서, 생각이 동굴에 빠져 전혀 밖을 못 봅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소용이 없습니다. 동굴에 깊이 빠져 들어간 그 사람 모릅니다. 무지하기 이를 때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합니까? 불쌍합니다. 또한 종족의 우상이 있습니다. 인간성에 메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므로 라고 말합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이러며 자기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진실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른 지식을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를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것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말합니다. 바른 지식을 얻기 위해선 첫째가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찾고 나서야 지식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의심하는 자는 아무것도 모르게 됩니다. 믿으십시오. 믿고야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믿음이 정당한 기초 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진실이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야 지식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도 없고 진실도 없으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내가 선택한 그 선택이, 자유인줄로 착각을 합니다. 내 결정 내 판단 자체가 지금 병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을 한 줄 알지만, 정신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성이 벌써 병들었습니다. 다시 보십시오. 돈에 눈이 어두웠고, 시기, 질투에 눈이 어두웠고, 욕심에 빠졌고, 근심, 걱정, 불신앙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바른 판단을 하겠습니까? 내 판단력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말하면 이미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바리새교인이 그렇고 가롯유다가 그랬습니다. 사탄에게 붙들려 있는데 어떻게 그 생각이 바르겠습니까??그러므로 가야바가 이런 망언을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 영혼이 얼마나 자유 합니까? 벌써 나는 자유를 잃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쌍한 것입니다. 판단의 능력과 지혜가 없습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저들은 모릅니다. 무엇을 모르냐구요? 자기가 한 행동의 후속 결과를 모릅니다. 그 미래를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실 때 뭐라고 하십니까? 빌라도가 손을 씻으면서 아무리 보아도 이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인데 왜 자꾸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죄가 없다고 하고, 너희가 당하라라고 합니다. 그 때에 참 엄청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5절에 보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 결과 40년 후에 예루살렘은 철저하게 망해서 없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망해서 없어져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꼭 그렇게 연계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떤 분들은 그렇게 해석도 합니다. 히틀러 때에 죄 없는 유대인, 전쟁도 아닙니다. 서로 총을 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600만 유대인을 잡아 죽였습니다. 요즘 우리 전쟁에 몇 백 명, 몇 십 명 이렇습니다만, 자 서로 마주 총을 쏘는 것도 아닌데, 600만의 유대사람을 끌어다가 가스실에서 죽였습니다. 어찌해 역사에 이렇게 끔찍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제 옛날로 돌아가 봅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그 피를, 그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라. 돌아갔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게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아버지여 이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여기에 깊이 생각하면, 구원론이 있고, 선교론이 있다고 합니다. 모르니까. 몰라서 저러니까. 불쌍히 여기고 이제 알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제 깨우치면 되겠습니까. 자유가 없는 사람을 자유케 하면 되겠습니까. 생각이 망가진 사람들을 중생케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사하여 주옵소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무지한 사람들을 높은 차원에서 사랑했습니다. 불쌍히 여겼습니다. 연민의 정을 가지고 대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면서, 십자가를 지우는 사람들을 연민의 눈으로 내려다 보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셨습니다.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여기에 진정한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마음속에 아무 미움이 없습니다. 아무 원망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 있습니다. 뜨거운 사랑만 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승리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일생동안 잊지 못하는 김일두 목사님과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여름, 참 더운 때에 교통수단이 좋지 못한 때가 되서 보따리를 짊어지고 몇 십리 길을 걸어서 부흥회를 하러 어느 시골을 가는데, 가다가 높은 산을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덥지만, 올라가서 저위로 가서 바람을 좀 쐬고 가겠다 해서 비지땀을 흘리며 참고, 참고 해서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옷을 벗어놓고 저기서 불어오는 바람을 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술 취한 청년 하나가 비틀비틀 올라오더니 목사님을 쳐다보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왔냐? 그리고 막 팼다고 합니다. 이리 때리고, 저리 때리고, 이렇게 억울할 때가 어디 있습니까? 경쟁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때리다가 지쳐서 씨익씨익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에 목사님이 손을 딱 잡으면서 형님 다 때렸소? 다 때렸다 어때? 라고 하더랍니다. 제가 옛날에 목사님과 악수를 해 보았는데요. 이 분이 옛날에 신천장의 유명한 깡패셨습니다. 손이 한 번 잡으니 부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딱 쥐고 한마디 했습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이 사람이 못 알아들었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김일두야. 깜짝 놀라서 그 사람이 벌벌 떨었습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 이런 일을 당했으면, 자네는 아예 여기서 묻혔을 거야. 그런데, 내가 예수님을 믿은 덕에 네가 살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여러분,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래서 그 청년이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했더니 따라오라고 해서 데리고 가서 부흥회 일주일 동안 참석하고 거기서 회개하고 예수님 믿고 세례 받고 나중에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씀하시며 싱글싱글 웃으시는데, 너무너무 놀랍고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여러분, 매 맞으면서 미워했겠습니까? 매 맞으면서 신세타령을 했겠습니까? 그는 억울한 매를 맞으면서 불쌍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이 술도깨비에 빠져서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나. 이렇게 망가졌나. 그를 불쌍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하고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장 불행한 것은 알 권리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더 불행한 것은 알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더 불행한 것은 알 자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성령 안에서 새로워져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착실한 제자 스데반도 순교하면서 똑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순교자는 다 그런 모습으로 갔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승리가 있습니다.

* 기도
하나님아버지 오늘 저희에게 은혜를 알고 주의 사랑에 감격하며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우리의 영의 귀를 열어주시고, 영의 눈을 열어주셔서 항상 주의 음성을 바로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 하시던 그 깊은 의미를 깨닫고 감격하며, 나 도한 같은 마음 같은 기도를 하며 그렇게 한평생을 살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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