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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1.06.24
제 목 :전쟁의 경륜적 속성
본 문 :삼상 17 : 41 ∼ 49
성도 여러분, 무서운 전쟁은 왜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왜 이 세상에는 고통의 날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까? 왜 질병이 있고 실패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면 또 두 문제가 생기고 세상은 갈수록 갈수록 난감하고 어둡기만 하고 벼랑에 선 것만 같은 위기를 체험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사람마다 혹은 그 어느 누구도 원인을 모를 일이 아닙니다. 알면서 부인하려고 합니다. 인정을 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을 기피하려고 합니다. 계속 이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부인하려고 하는 일 때문에 세상은 더더욱 어지러워지는 것이올시다.
1968년 윌(Will)박사와 아리엘 듀란트(Ariel Durant)라고 하는 박사님께서 역사를 깊이 연구하는 중에 ‘이 지구촌에 전쟁이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것을 자세하게 면밀하게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했더니 지난 3421년, 이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3421년 동안에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86년에 불과했습니다. 이 말은 이 지구촌 역사에는 91.6%의 나날이 전쟁으로 점철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 없는 날이 없었다는 얘기지요. 지난 100년, 20세기 하나만을 놓고 보아도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서 약 9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여기서 죽었습니다.
예일대학에 역사와 문명을 가르치는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 이라고 하는 교수님이 쓴 “On the Origin of War”라고 하는 ‘전쟁의 기원’ 이라고 하는 그 책에서 그는 깊은 역사 연구 속에서 전쟁의 동기, 전쟁이 왜 있어졌느냐 하는 것을 총괄적으로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두렵기 때문에 너무 두렵기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발작을 해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힘이 넉넉하면 힘의 여유가 있으면 요사이 말로 초강대적 여유가 있으면은 전쟁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큰 힘이 평화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죠. 이런 것을 심리적 전쟁동기론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이익을 추구하는 겁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자기와 혹은 자국에 이익을 추구하면서 그 때문에 생기는 전쟁, 이것은 실리적 전쟁동기론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명예를 추구하는 명분적 전쟁 동기론이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2차대전 때, 독일 사람들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죽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사람이 최고랍니다. 영국사람들은 앵글로 색슨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승리자의 명예, 승리자의 영광, 개인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이런 것을 자랑하면서 소위 명분적 전쟁동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올시다. 여러분, 한국 역사 연구회에서 내놓은 ‘한국 역사 속의 전쟁’이라고 하는 책중에 이런 부분을 읽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6.25전쟁 때 남북한을 합쳐서 대략 250만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여기에 부상자까지 합치면은 500만 명입니다. 죽거나 부상당한 겁니다. 그 외에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온 민족적이지만은 죽거나 부상당한 것, 500만명이라는 것은 당시 인구로 보면 1/6입니다. 여섯사람 중에 한사람이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이런 엄청난 일을 우리는 지난날에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겪은 역사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A Study of History”라고 하는 ‘역사 연구’라고 하는 책, 열두권이나 되는 방대한 책에서 인류 역사를 자세하게 면밀하게 연구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여기는 도전과 응전이 있다. 인류는 계속해서 문제의 도전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좌우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성경은 아주 짧은 내용입니다. 몇 절밖에 안 되는 짧은 이야기요 드라마틱한 역사적인 이야기입니다만은, 이 속에 엄청난 역사 해석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아주 천진 난만한 깨끗한 믿음의 소유자, 다윗 소년의 고백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이게 사람의 일처럼 보이는데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의 일처럼 보이고, 누구 때문이라고 보여지는데, 그 깊은 곳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예요. 하나님께서 전쟁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믿음으로 그렇게 수용하고 이해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십니다. 섭리자가 되십니다. 경륜자가 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흔히 계시라고 말합니다. 신학적으로 말할 때 ‘자연계시’, ‘특별계시’ 라는 말을 합니다. ‘자연계시’라 함은 자연의 질서 속에 있는 계시. 인간의 마음, 심성 속에 있는 계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 인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답니다. 역사는 살아 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깊은, 확실한 말씀이 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특별계시.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시고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전도자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끝끝내 듣지 않을 때, 교만할 때, 빗나갈 때 극단적 형태, 비상 조치를 취하십니다. 사건으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전쟁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십니다. 역사 속에서 말씀하시고, 역사 속에서 당신의 백성을 개인으로나, 민족적으로나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 엄청난 전쟁이라고 하는 역사 속에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쟁을 치른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구촌 여기 저기서 지금도 전쟁이 터지고 있습니다. 강 건너 불처럼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죽음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했습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 언제나 전쟁은 있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깊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통해서 심판하십니다. 감추어진 비리와 악을 들추어냅니다. 인간들의 변명, 인간들의 정당화, 인간들의 악한행동, 은폐해 놓은 사건들을 백일하에 확실하게 드러내십니다. 죄로 인해서 망합니다. 무기가 아닙니다. 죄 때문에 망합니다. 나라도 개인도 죄 때문에 망합니다. 의인은 나라를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죄는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요새 와서 구소련이 만들어 놓은 무기, 원자무기는 물론이고 화학무기까지. 이 화학 무기를 많이 만들어 놓았는데 이렇게 만들어 놓고, 구소련은 무너집니다. 이 지금 화학 무기를 어떻게 처분하느냐? 이건 땅에 묻어놔도 문제요 바다에 던져도 문제요, 이게 만일에 터지는 날이면 온 세계가 큰일납니다. 지금 온 세계의 걱정거리입니다. 그러면 구 러시아 소련이 무기가 없어서 망했습니까? 과학기술이 모자라서 망했습니까? 죄로 인하여 무너진 것이요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건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무엘하 7장 4절에 보면 인생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준비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주 목줄처럼 확실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유대나라가 망할 때마다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망했고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망했습니다만은 성경은 강하게, 강하게 증거하십니다. 바벨론 때문도 아니고, 앗수르 때문도 아니에요. 이스라엘에 전쟁이 있어진 것은 죄악 때문이에요. 그들의 죄가 전쟁을 불러 놓은 것이에요. 그들의 악이 바벨론 사람을 불러들인 것이에요.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핵심적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무기의 문제가 아니에요. 오로지 의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심판하십니다. 이 방법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의가 땅에 묻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놀랍게도 초점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습니다. 그 놀라운 섭리, 놀라운 은총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쟁은 있어집니다.
1945년 8월입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지금도 히로시마에 가시거든 원폭투하 되었던 바로 그 자리에 만들어 놓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한번 시간을 내어서 일부러 가서라도 한 번 보십시오. 저는 두 번 가보았는데요, 큰 감동이 있습니다. 원자탄 하나에 일시에 꽝 하는 순간에 50만명이 사라집니다. 이 쇠붙이는 다 녹아 없어지고 심지어는 이 돌 위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림자만 남고 사람은 없어져요. 아주 그냥 깨끗하게 사라집니다. 모든 집, 건물이 그대로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한 성전에 성당에 있었던 종 하나가 요만합니다. 노란 종 하나가 그대로 있습니다. 요한 석상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을 고대로 떠다가 박물관에 갖다 놓고 그 옆에 이렇게 써있습니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Unbelievable,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이 종이 원자탄의 불꽃 속에서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저는 그 앞에 서서 30분 동안 조용히 명상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있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꽝 하는 순간에 50만명이 날아가 버리는데 그래도 그 불꽃 속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그것이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나 여기에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고. “내가 거기 있었노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괘도를 수정하게 합니다. 역사가들이 어떻게 기록하고 이해할는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만은 만일에 우리가 6.25라는 사건을 겪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들 말합니다. 꼭 월남이 되었을 것입니다. 남한은 공산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 북쪽에서 너무 서둘러서, 공산화란 그렇게 전쟁을 통해 이루는 게 아닌데, 서둘렀기 때문에 그만 공산주의라고 하는 악이 만천하에 노출되면서 엄격히 말하면 온 세계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6.25는 역사의 피안에 서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높이높이 드러내십니다.
오늘 성경에 나타난 다윗의 이야기. 너무나 잘 아는 동화 같은 이야기 아닙니까? 소년 다윗의 힘으로 이긴 것입니까? 하나님의 힘으로 이긴 것이에요. 그의 지혜도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요, 그의 무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이긴 것이올시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골리앗 대장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다윗을 다만 집행자로 사용했을 뿐이요.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일 뿐입니다. 여기에 참 구원과 참 믿음의 승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혹 영화를 보십니까? 혹은 전쟁영화를 보십니까? 전쟁영화는 다 끔찍하지요. 그러나 그 역사 속에 메시지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그 서부활극 같은 것 보면은 마차가 구르고 총을 쏘고 마차에서 떨어지고 난리가 납니다. 모두가 손에 땀을 쥡니다만은 이런 전쟁영화를 보는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연은 절대로 안 죽는다’ 그걸 알고 보아야 됩니다. 이 영화 끝날 때까지는 안 죽어요. 이게 시나리오예요. 하나님의 엄청난 시나리오 속에 내가 있고 역사가 있는 것이올시다. 주의 음성을 들어보십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원인이 있는 곳에 결과가 옵니다. 죄가 있는 곳에 전쟁이 있습니다. 불의와 부정이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외세를 탓할 것도 없고 무기를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안에서 썩을 때, 전쟁을 통해서 청소합니다. 우리가 바로잡지 못하면 하나님이 손을 댑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회개하도록 강권을 쓰십니다.
여러분 시편 46편 10절에 있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다. “조용하야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니라.” 조용하여 하나님의 역사 앞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 그대로, 그대로 전적으로 수용을 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주의 음성을 들어보세요. 조용하야 네가 하나님 됨을 알지니라. 내가 역사의 주인 됨을 알지니라. 내가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함을 알지니라. 내 이름을 내가 스스로 높이는 것을 너희가 알지니라.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전쟁이라고 하는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 무거운 채찍을 맞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세월에는 그 징계를 받고도,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부패와 부정, 거짓과 교만으로 얼룩지고 가득한 그러한 무서운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또다시 매를 맞아야 하지 않는가? 걱정도 됩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주의 백성들에게 간절한 회개와 기도와 믿음을 보시고 주여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회개의 용기를 주시옵소서. 바른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의 이름을 높이며 전쟁 없이 주의 영광을 드러내며 전쟁 없이 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주님의 백성들, 주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