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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권세자의 속성

시편 37: 1 ~ 11

곽선희 목사

2002.04.21

날 짜 :2002.04.21
제 목 :참 권세자의 속성
본 문 :시편 37 : 1 ∼ 11

아주 옛날 이야기입니다. 옛날 농촌에서는 농한기가 되면 특별히 겨울 한겨울 동안, 긴 긴 겨울동안에 사실 이렇다할 오락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네마다 종종 이러한 일들이 있었던 것을 옛날 어른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소싸움을 합니다. 자기네 소가 제일 좋다, 내세워 가지고 소싸움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개싸움을 시킵니다. 소위 투견이라 그러죠. 그런가 하면 또 닭싸움을 시켰어요. 투계라고 하죠. 싸움닭을 키워 가지고 이렇게 두 마리씩 한 가운데다 모아 놓으면 닭들끼리 싸우는데 마치 자기 닭이 이기면 자기가 이긴 것처럼 신바람이 나고 그렇습니다. 이 투계 때문에 동네싸움이 되는 그런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저희 아버님께서는 마당에다 소를 매놓고 가끔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는 잘 모를 거다. 저 소는 우리 면에서 최고로 좋은 소다” 그랬어요. 글쎄, 얼마나 좋은 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렇게 힘이 세고 좋은 소를 가졌다 하는 것을 자랑삼고 뭐 그러했던 것을 봅니다.
중국의 어느 지방에 싸움닭을, 투계를 잘 훈련시키는 조련사가 있었답니다. 하루는 그 지방의 영주가 이 조련사를 찾아가서 아주 내 닭을 훌륭한 닭을 싸움을 잘 하는 닭으로 그렇게 훈련시켜 달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 닭은 몸집도 크고 닭 벼슬도 아주 붉고 큼직한 닭인 것은 틀림없는데 다른 닭을 보기만 하면 비실비실 도망가고 한구석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예요. 이게 영, 영주가 기분이 좋질 않아요. 어떻게 해야 이걸 훈련을 시킬까 해서 이렇게 전문적인 조련사에게 부탁을 했는데 한달 동안을 맡기어 놨다가 가보니깐 닭의 눈매가 또릿또릿해졌어요. ‘아, 이게 되가는구나.’ 또 한달 후에 가 보았더니 아주 싸움을 잘해요. ‘그래서 이만하면 됐구나.’ 또 한달 후에 가 보았더니 닥치는 데로 싸워요. ‘아, 이거 훈련을 참 잘시켰다. 됐다’ 하고 이제 데리고 가겠다고 했더니 “아, 아닙니다. 한 달만 더 두세요.” 한달 후에 다시 가 보았더니 이 닭이 마당 한가운데 떡 서있어요. 싸울 생각을 안 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른 닭들이 대들질 않아요. 감히 대들질 못해요. 아주 조용한 거예요. 이 닭이 가운데 서서 척 바라만 보면 모든 닭들이 다 비실비실 도망을 가는 거야. “이제 됐습니다. 이 닭을 가지고 가세요.” 여러분 이걸 아셔야 됩니다. 그냥 있기만 해도 감히 다른 닭이 대들지 못하고 피하는 그 위엄 있는 싸움닭이 최고의 닭입니다. 푸드덕거리고 싸우는 닭은 시원치 않은 닭입니다.
온유함이란, 이 ‘프라우어테이스’라고 하는 말은 결코 나약함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비겁함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강한 위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건 군인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가장 강한 군인은 싸움 없는 군인이요. 가장 큰 힘은 평화가 있는 힘입니다. 여러분, 가장 큰 승리는 원수가 찾아와서 화해를 청하는 그러한 힘이 그것이 가장 큰 승리올시다.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일만명을 상대로 해서 아주 면밀하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통계에 의하면 성공의 비결이 뭐냐? 성공의 결정적 원인이 뭐냐하는 질문에 자본과 기술과 두뇌, 이것은 15%밖에 안됩니다. 성공의 결정적 요인은 화평과 온유한 성품이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성품, 이것이 성공 비결임을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기술로 이기는 게 아니에요. 성품이요 온유가 성품화 된 그 인격이 모든 면에 성공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왕권을 말합니다. 왕의 권세를 뜻합니다. 옛날에는 왕이 지방 영주에게 왕권을 주었어요. 온유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왕권을 주신다 그런 말씀입니다.
온유란, 자기 자신을 이기는 힘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내가 나를 이긴 사람이 온유합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이겼을 때 여유 있습니다. 온유합니다. 자기 자신을 이겼을 때, 자기자신과의 싸움에 실패한 자는 항상 불안에 떨고 목소리만 커집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넉넉하게 이긴 사람은 온유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니라. 악한 사람 잘된다고 원망할 것 없어요. 불의한 자가 잘 산다고 거기에 질투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는 벌써 자기 마음을 다스렸어요. 그리고 멀리 내다보고 있어요. 오늘 본문에 말합니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채소같이 마를 것임이로다. 잠시 후에 그곳을 살필지라도 없을 것이다. 벌써 내다보고 있어요. 현재에 매이지 않고 멀리 내다보고 있어서 그로서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렸어요. 벌써 저만큼 내다보며 그는 불평도 원망도 없습니다. 여기 온유함이 있는 것이올시다.
또한 온유란 오늘 7절에 보면 ‘여호와를 기다리라.’ 기다리는 마음이에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기다림, 인내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온유가 인내로 나타나는 것이죠. 이것은 원망도 없습니다. 불평도 없습니다. 전 ‘온유’ 하게 되면 꼭 생각해야 될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입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모든 사람보다 모세는 특별히 온유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온유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데로 화가 났을 때에 아무리 애국심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는 하지마는 애굽사람을 때려죽인 사람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그는 비겁하게 도망을 해서 광야에 나가서 40년을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온유합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석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해서 그냥 내려 쳐 가지고 깨뜨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 민수기 20장에 보면은 반석을 꽝꽝! 두 번 내리치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혈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보다 제일 온유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평가가 그렇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자, 이제 민수기 12장에 있는 이야기를 잠깐 살펴봅니다. 모세가 벌써 나이가 많았습니다. 80이 넘은 나이지마는 그가 구스여자, 자기 집 하녀로 있는 여자를 소실로 맞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고 또 물론 모든 사람에게 알려질 때 특별히 그 미리암이라고 하는 누나가 이걸 못 봐 줍니다. 마음대로 비방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무슨 짓이냐,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뭐 그랬지요. 자, 그럴 때에 성경에는 그 다음 이야기는 없습니다. 없을 수밖에 없는 게 모세가 말이 없거든요. 모세의 불평도 없고 원망도 없어요. 비방하는 자를 대신 비방한 일도 없어요.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을 아십니다. 모세의 침묵을 이해했습니다. 그 침묵 속에는 온유함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랬겠지요. ‘죄인보고 죄인이라는데 무슨 할 말이 있노. 잘못은 내가 한 건데 무슨 말로 비방을 듣던 그건 할말이 없는 기라.’ 가만히 있습니다. 그 조용한 침묵을 하나님께서는 온유로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이만한 사람이 없다 그랬어요. 그렇습니다. 대개 비방을 들으면 비방하려고 그러죠. 누가 비방을 하면 “너는!” 한마디하고 싶죠. 그 무언가 변명하고 싶죠.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글쎄올시다. 모세는 변명도 없어요. 대신 비방하지도 않았어요. 또 원망하지도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실 때 저는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다. 그래서 미리암을 쳤어요. 그리고 모세의 그 거룩한 온유한 성품 위에 왕권을 주었어요. 여러분, 이 점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는 조용하게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기다렸어요. 말이 없어요. 불평도 없어요. 원망도 없어요. 조용히 기다립니다. 인내력이 거기서 나옵니다. 그 온유함이 인내로 나타났던 것이에요.
철학가, 여러분이 아시는 플라톤이라고 그러죠. 그의 폴리테이아라고 하는 그 유명한 고전 책에서 사람의 삶의 형식을 네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가 욕망적 형식입니다. 욕망적인 삶. 즉, 쾌락을 추구하는 겁니다. 육체적·정신적 쾌락, 쾌락지상주의로 치닫는 이런 욕망 지향적 인간이 있고, 또 하나는 이익 지향적인 사람이 있다. 그저 소유가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벌고 또 벌고, 뭐 사실 그렇게 많이 벌 필요가 없는데 많이 가지는 것이 자기 생을 크게 만들고 물질의 부가 인격의 높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어요. 계속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그런 소유 지향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하나가 정치적인 삶입니다. 명예와 권력을 좋아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 제가 아는데, 국회에 국회의원으로 여러 번 출마했다가 재산 다 없애고 아주 그러면서도 또 출마하는 사람 봤어요. 그래 왜 그렇게 하느냐, 그랬더니 절보고 하는 말이 “목사님은 그걸 못해봤으니깐 모를 겁니다. 그 권력이라는 것이 그 매력이 있는 겁니다. 그 선거 운동할 때 손 번쩍 들면은 모두가 아∼만세하고 할 때 이게 기가 막힌 겁니다 이거. 그거 목사님은 모를 겁니다.” 글쎄올시다. 사실 모르죠.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거 있습니다. 이 정치와 권력에 미치면 거 정신없어요. 마약보다 무섭대요 그게. 이런 류의 인간이 있어요. 항상 권력과 명예 그거를 찾아나가는 그런 사람이 있거든요.
또 한사람은 관조 지향적 인간이올시다. 의미와 높은 가치를 추구합니다. 보이는 것이나 지위, 그 무상함을 알고 있습니다. 소유라는 것이 별것 아닌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왜요? 가치를 깊은 곳에서 찾으니까. ‘의미와 높은 가치, 그리고 지혜를 추구하는 인간, 이게 바로 철학을 아는 인간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릴 것입니다. 세상에 부한 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고, 악한 자의 성공도 있고 의로운 자의 고난도 있어요. 그러나 잠잠하게 주님의 처분을 기다립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의가 있음을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음을 알고 믿고 추구합니다. 그것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 길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방법도 목적도 특별히 결과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운명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고 조용히 주의 뜻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다 맡기고 평안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한 바로 그 마음이 그게 온유함이올시다.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내가 붙들고 있어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을, 그게 교만입니다. 다 맡기고 손을 드세요. 그것이 온유함입니다. 거기에 평안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의의 최종 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 주시리라. 지금 땅에 묻혔어요. 내가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요. 사람들은 몰라줘요. 그러나 네 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그 언젠가는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줄 것이다. 그것을 믿기 때문에 오늘 여유가 있고 온유하여지는 것이올시다.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는 철학자의 수사학이라고 하는 명저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사람의 마음을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 지도력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기본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합니다.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유명한 말입니다. 이 세가지를 말합니다. 로고스는 논리적이고 체계성 적인 지식입니다. 논리성이 있어야돼요. 주먹구구로는 안돼요. 체계적이고 논리적 지식이 있어야하고. 또 한가지는 파토스입니다. 정열입니다, Passion. 열심과 정열 일 자체를 즐기는 거예요. 거기에 생명을 거는 거요. 이런 정열자라야 되고, 또 한가지는 에토스입니다. 윤리성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데로 윤리성을 잃어버린 지도자는 지도자일 수가 없습니다. 윤리성을 잃어버린 자는 절대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우리는 그의 말을 믿을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거예요. 가장 큰 지도력은 윤리성에서 나오는 겁니다. 보십시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의,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그 시간을 바라보며 온유하고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또 나아가서는 온유한 사람은 계속적으로 배우는 마음입니다. 항상 자기 부족을 알고 많은 지시를 듣고 많은 말씀을 듣고 계속적으로 누구에게서든지 배웁니다. 언제든지 배우는 자세, 어떤 경우에도 배우는 자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조용히 기다리는 그런 자세, 이게 온유함이올시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겠다.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라 그랬습니다. 보세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면 화평과 Enjoy,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자가 땅을 차지하면 불안과 공포가 있습니다. 저주와 비방이 있습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온유한 자에게 권세를 주시고 그는 권세 안에서 화평과 즐거움 오너쉽, Ownership을 즐기는 것이에요. 이것이 온유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온유는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온유한 성품, 참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러해야 될 줄 알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문제올시다. 사탄은 계속 우리를 교만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우리를 온유 온유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를 들어봅시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 온유, 절제. 온유와 절제,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이 사람을 온유하게 만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를 찾으십니다. 온유한 자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그에게 화평과 즐거움을 주십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교만할만한 교만거리가 아무 것도 없건만 어느 사이에 교만해지고 작은 일에도 늘 교만이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겸손하고 또 온유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온유의 강함을 터득하게 하시고 온유함 속에 있는 권세와 평강과 기쁨을 항상 향유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유한 자에게 약속한 그 엄청난 능력과 권세를 우리 또한 소유하고 그 안에서 화평과 기쁨의 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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