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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했다 말하는 이에게
<슬픈 어버이날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온 가족 주일이면서 동시에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감사하며, 귀한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의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라고 하신 주님의 십계명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 말씀을 여러 번 인용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함께 기억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늘 이때가 되면 항상 부모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날에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터로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 쓸 것을 아껴 자녀들을 먹이고 교육비로 사용했던 어머니의 소박한 모습들을 기억합니다. 또한 자녀를 위해 헌신을 다한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에 빠진 아이를 살려 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아버지의 이야기, 중증 장애인 자녀와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노부부에 대한 이야기, 북에서 홀로 탈출한 뒤 남겨진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중국에서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의 이야기 등…. 어머니와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년 이날마다 부모님 사랑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날은 당연하고 기쁘고 즐거운 날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조금 뜻밖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사실 어버이날이 되면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어버이날을 기쁘게 보내지만, 뜨거운 축제 같은 이날이 때로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숨겨져 있는 이야기이자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라는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힘든 과제이자 가혹한 폭력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 나쁜 부모는 없다”라는 말이 상처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보호막이 아닌 감옥처럼 느껴지는 삶을 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삶이 이해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분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가길 원합니다.
2021년에 출간된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기록』(글항아리, 2021)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11명의 생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직접 쓴 수기 형식의 글입니다. 그중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명아’라는 이름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예쁘다는 말을 꽤 들었던 명아에게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이 시작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후인 아직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이 가시지 않은 때였습니다. 명아는 반복되는 성폭력을 당하며 공황장애, 정체성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를 겪으며 살아갑니다. 가해자인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이 받았던 성폭력의 역사를 종이에 씁니다. 가해자인 아버지가 이미 사망했음에도 그는 아버지에 대한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합니다. 하지만 친족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판결을 얻어 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자 명아는 자기 스스로 직접 판결문을 씁니다. 친부의 친권 즉시 박탈, 그리고 총 120년 형의 선고를 담은 판결문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법적 효력이 없는 판결 문서였습니다. 그러나 명아에게는 30년간 막혀 있던 목소리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간의 억울함, 고통이 세상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버이날은 과연 어떤 날일까요?
2025년 8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아동학대 연차 보고서에 의하면 한 해 아동학대 사례가 24,492건으로 나타났습니다. 2만 건 이상의 아동학대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학대 행위자 중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84%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전체 학대의 82%가 가정 내에서 발생했습니다. 부모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사람들에게 어버이날은 어떤 날일까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이 이들에게는 또 다른 죄책감을 부추기는 폭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큰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여러 조그마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는데, 과거의 기억으로 부모님에 대한 약간의 원망이 일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버이날만큼은 그런 마음들을 잠시 묻어 두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도 가정의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27편에 아주 짤막하지만 뭉클한 느낌이 드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10)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단호하고 명백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시편 27편 앞부분에 저자의 이름이 새겨 있습니다. ‘다윗의 시’라는 표기입니다. 다윗의 삶이 어떠하였기에 그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다윗과 부모님과의 관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경에서 다윗의 부모님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윗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중 한 명에게 기름을 부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새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때 아버지 이새는 일곱 아들들을 사무엘 앞에 세워 놓습니다. 하지만 다윗만은 들에서 양을 치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이새가 엘리압을 먼저 앞세웁니다. 그는 사무엘이 언뜻 보기에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를 거절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이후에 이새는 아비나답을 불러서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또 삼마로 지나가게 하였지만,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머지 아들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삼상 16:10~11)
사무엘이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라고 묻기 전까지 이새는 다윗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는 다윗이 가족의 중요한 결정 상황에서 배제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다윗이 아버지의 마음에 그리 희망적인 아들이 아니었음을 암시합니다.
17장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 군대에는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막기 위해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새의 아들 중에는 장자 엘리압, 둘째 아비나답, 셋째 삼마가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40여 일간이나 지속되고 있는 전쟁 중에 이새는 막내 다윗에게 이해할 수 없는 심부름을 시킵니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찾아가서 형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먹을 것을 전해 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삼상 17:17~19)
이새는 전쟁통에 어린아이를 보냅니다. 오고 가는 사이에 다윗의 안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형들이 배고플 것 같으니 먹을 것을 전해 주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에게 그런 심부름을 시킬 수 있을까요? 이새의 마음에는 전쟁터에 나간 세 형제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천부장에게도 먹을 것을 갖다주어서 형들이 잘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아버지 이새에게 다윗의 안전과 생사는 그다지 관심거리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에 대한 가족들의 멸시와 편견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한 구절이 있습니다. 다윗이 마침내 골리앗과 대치하고 있는 장소로 들어가 형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큰형 엘리압은 그곳까지 먹을 것을 가져온 다윗을 칭찬하거나 그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야단칩니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삼상 17:28)
이 말 속에는 막냇동생에 대한 무시와 편견이 가득 차 있습니다. 다윗을 걱정하기보다는 도리어 들에 두고 온 양들을 걱정하는 마음뿐입니다. 형들의 마음에 다윗은 그저 들에서 양이나 치는 아이일 뿐, 전쟁터에 나올 자격도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었던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경험들이 압축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나를 버려도 (시 27:10, 새번역)
이 고백은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가정으로부터 정서적인 지지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대우받지 못한 만큼 그렇게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할까요? 남은 상처 때문에 부모를 볼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도리어 원한을 갚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올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비로소 다윗은 한 가정의 아이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행동하였을까요? 부모에게 모든 것을 갚으려 하거나 모르는 척했을까요? 사무엘상 22장에 흥미로운 기록이 나옵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추격을 받고 아둘람 굴에 피해 있을 때였습니다. 그의 형제와 온 집안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다윗에게로 내려옵니다. 이때 다윗은 자신도 쫓기는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연로한 부모의 안정을 위해 가장 먼저 걱정합니다. 다윗은 부모를 모시고 모압의 미스바로 향합니다. 그리고 모압 왕에게 자신의 부모를 의탁합니다.
다윗은 거기에서 모압의 미스바로 가서 모압 왕에게 간청하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 주실 때까지, 나의 부모가 이 곳으로 들어와 임금님과 함께 머물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자기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하였다. 다윗이 산성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다윗의 부모는 모압 왕과 함께 살았다. (삼상 22:3~4, 새번역)
왜 하필이면 다윗은 모압 왕에게 자신의 부모를 맡겼을까요? 이것은 다윗의 가정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의 증조할머니인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즉, 다윗의 집안은 모압과 혈연관계였습니다. 이새에게 모압은 일종의 외가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부모를 안전하게 모시기를 원했던 다윗은 부모를 모압으로 옮긴 것입니다. 다윗의 효성스러운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성경은 이렇듯 다윗이 부모님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법한 상황에서도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 부모를 외면하지 않고 공경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차별이나 소외를 뒤로하고 부모님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킵니다. 이러한 모습은 다윗의 성숙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다윗의 부모가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추가적인 기록이 성경에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은 다윗이 가장 힘든 시기에서도 부모를 봉양하는 책임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은 차별과 억울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부모를 모시며 공경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부모님으로부터 말 못할 일을 당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부모님에게 용서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요? 다윗은 오늘의 시편 본문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10)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접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나를 영접해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영접하다(אָסַף, 아사프)’라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받아들인다는 뜻을 넘어 ‘거두어 보호하다’, ‘불러 모으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기억하는 시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하나님께서 나를 영접해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꽃이 되도록 불러 주셨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언제 이런 경험을 했을까요? 사무엘이 기름 뿔을 들고 이새를 찾아왔을 때, 다윗은 아무것도 모른 채 들판에 있었습니다. 정작 아버지는 다윗을 후보군에 넣지도 않고 그를 부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모가 출중하고 외견상으로 대단한 형들을 뒤로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삼상 16:12b, 새번역)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바로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 놀라는 이새와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순간 다윗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한 번도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그가 중심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주십니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자격 미달’로 통하였던 다윗이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내 마음에 합한 자’가 됩니다.
그 순간 다윗은 지금까지 부모의 눈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던 모든 노력을 멈춥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그 가치를 찾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눈이 맞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후로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 꽃이 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상처로 남은 시간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다윗이 부모와 형제들의 무관심 속에서 외롭게 양을 치던 시간은 큰 상처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들판에서 양들을 맹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윗은 늘 홀로 힘겨운 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험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고 계심을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아주 아름답게 노래한 시가 있습니다.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2)
아버지에게 대우도 받지 못하고 들에서 양들이나 돌보던 억울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도리어 그 자리가 놀라운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하나님이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신다.” 그는 어렵고 척박한 현실 속에서 도리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들판에 어린아이 다윗을 홀로 내보냈지만, 하나님은 그 들판에서 다윗과 함께하셨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삼상 17:37)
다윗은 부모로부터 받은 ‘거절감’에 함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미성숙한 부모의 인정에 목마른 어린아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정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다윗은 칼과 창을 들고 나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늘 들판에서 맹수를 쫓기 위해 사용했던 물맷돌을 들고 나갑니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들판에서 양 떼나 돌보고 있었던 다윗입니다. 날마다 그가 던졌던 물맷돌은 어쩌면 고독과 외로움이 담긴 돌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홀로 짐승들과 싸우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삶이었습니다. 아무도 돌아보아 주지 않는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느라 혼자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물맷돌 던지기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찮게 보이던 물맷돌로 다윗은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그 순간 다윗은 그가 고독하게 보냈던 모든 순간이 단번에 하나님의 은혜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광야와 같았던 시간이 바로 오늘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자기를 훈련하시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간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부모로부터 받아 온 차별과 불평등한 대우가 눈 녹듯 녹아드는 경험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자신을 소외시켰던 부모를 아둘람 굴에서 정성껏 모시고 모압 땅까지 피신시켰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성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 잔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쳤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다윗에게 용서를 구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이 모든 상처와 허물을 메우고도 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기가 너무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수백 가지가 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를 공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혹은 부모님들이 회개하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조건 없이 ‘영접’하여 주셨기 때문에 부모의 부족함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풍성해지면 용서할 수 있는 공간과 받아들이고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비이고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부모라는 이름이 따뜻함보다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이 쇠사슬같이 느껴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도 그와 같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다윗은 부모에게 순종하기 위해 억지로 애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먼저 충분히 사랑받아서 그 상처를 치유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치를 사람에게서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피해자라 부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 부르십니다. 복수가 아닌 승리를 선택합시다.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존재가 온전해질 때, 비로소 상처를 준 부모를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10)
이 약속이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 주고 새로운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To Those Who Say They Weren’t Loved
Psalm 27:10
Today is Parents’ Sunday. It is a day to remember and give thanks for the love we received from our parents. It is also a Sunday to thank God who gave us such precious parents.
Today we recall the commandment, “Honor your father and your mother” (Exodus 20:12 NIV). We remember, too, that our Lord Jesus quoted this commandment many times.
Who among us has not received a parent’s love? On a day like this we gladly pin flowers on our parents, prepare good food, and express gratitude for their love and labor.
For most, this day is natural, joyful, and pleasant.
However, there are those whose hearts break when Parents’ Day comes. To some, commonsensical statements—such as “Children must honor their parents” and “Children must be dutiful to their parents”—may feel like a heavy burden, even cruel violence.
Today’s word from God is for such people. It is God’s message to those who find this command to honor your parents harsher than any other commandment and impossible to accept.
Would you believe it if I told you that there are people deeply hurt by the saying, “There are no bad parents”? Can you understand those who feel that family is not a shelter but a prison? Can you believe that there are children who are terribly unloved by their parents?
Wish to Die But Want to Live: Records of Survivors of Intrafamilial Sexual Violence (title translated) is a book published in 2021 by Gulhangari. It contains firsthand accounts written by eleven survivors about the harm they suffered.
The following is the story Myeong‑a (not her real name), one of the survivors. For Myeong‑a, who as a child was often told she was pretty, her father’s sexual abuse began in second grade. It came one year after her mother’s death, when the shock of that loss had not yet faded. Enduring repeated sexual violence, she lived with panic disorder, identity disturbance, depression, and anxiety. Even after the perpetrator—her father—died, the pain did not disappear. When she felt she could no longer go on, she wrote down her history of sexual abuse for the first time in thirty years and, despite the perpetrator’s death, submitted a criminal complaint to the police. When society would not deliver judgment or take responsibility for intrafamilial sexual violence, Myeong‑a wrote her own verdict: immediate deprivation of the father’s parental rights and a sentence totaling 120 years. Though legally meaningless, that document was her way of giving voice to thirty years of silent suffocation.
The story of Hee‑mang (not her real name) is even more tragic. When Hee‑mang was a junior in college, she came home and accidentally saw her mother and younger brother committing atrocious acts. When her mother was caught, she forced her son to rape his sister—to prevent Hee-mang from telling the father.
How can such things happen? How could a mother do that to her own daughter?
For people like these, what does Parents’ Day mean? What do “mother” and “father” mean to them?
A news story reported just a few days ago also shows how many such shameless parents there are. In May of this year, a case made headlines in Siheung: an eight‑month‑old infant died by being struck repeatedly with a TV remote. A mother in her thirties reportedly hit her eight‑month‑old son’s head multiple times with a remote because he cried, and he died. The father was also charged with negligence for just standing by and not ensuring proper medical care to the child.
Also, according to the 2024 annual child abuse report published by the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in August 2025, there were 24,492 reported cases of child abuse in 2024. Of those, parents were the perpetrators in 20,603 cases—or 84.1%—and 82.9% of abuse occurred in the home.
As parents, we should be ashamed. For people like these, what does Parents’ Day mean? Is it a day they truly wish to forget? How would such people feel about the call to honor one’s parents? Might it not feel like another violence that stirs up guilt?
How, then, can these people be freed from such pain? What does Scripture teach those who have lived through such experiences?
Psalm 27, our text for today, gives us a short but deeply moving line:
“Though my father and mother forsake me, the LORD will receive me.” (Psalm 27:10 NIV)
This is the voice of someone saying he was abandoned by his parents. Then who is this person? How can he speak so decisively and plainly?
At the beginning of Psalm 27 it is written who the psalmist is. It is David.
If this is David’s psalm and his confession, why does he say this? What happened in his life that made him say this?
We do not have a full record of David’s relationship with his parents, but certain biblical episodes let us infer how his parents may have treated him.
One clear example that suggests David was not loved by his parents appears in 1 Samuel 16.
God commanded Samuel to anoint one of Jesse’s sons. So Samuel went to Jesse’s house. There, Jesse presented seven of his sons before Samuel. But David alone had been left to tend the sheep in the fields.
Jesse sent Eliab out first. Samuel saw him and was pleased with him. But God said, “Do not consider his appearance or his height, for I have rejected him. The Lord does not look at the things people look at. People look at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1 Samuel 16:7 NIV), and He rejected him.
After that Jesse called Abinadab to pass before Samuel, but God did not choose him. He had Shammah pass by as well, but the Lord did not choose him either.
“Jesse had seven of his sons pass before Samuel, but Samuel said to him, ‘The Lord has not chosen these.’ So he asked Jesse, ‘Are these all the sons you have?’ ‘There is still the youngest,’ Jesse answered. ‘He is tending the sheep.’ Samuel said, ‘Send for him; we will not sit down until he arrives.’” (1 Samuel 16:10–11 NIV)
Jesse had not even thought to call David until Samuel asked, “Are these all the sons you have”? This shows that David was excluded from important family decisions and events.
The following chapter, chapter 17, continues this story.
When the Philistines gathered their armies to fight, their champion was Goliath. To oppose them, Saul and the men of Israel camped in the Valley of Elah. Among Jesse’s sons, three—his eldest Eliab, his second Abinadab, and his third Shammah—were participating in that battle.
The conflict was in full swing, and the Bible says it continued for about forty days. Yet Jesse gave his youngest son David a puzzling errand: he sent him to check on his brothers at the battle and to bring them food.
“Now Jesse said to his son David, ‘Take this ephah of roasted grain and these ten loaves of bread for your brothers and hurry to their camp. Take along these ten cheeses to the commander of their unit. See how your brothers are and bring back some assurance from them. They are with Saul and all the men of Israel in the Valley of Elah, fighting against the Philistines.’” (1 Samuel 17:17–19 NIV)
How could Jesse send young David, his youngest son, on such an errand? Something might happen to him on his way to the battlefield, and yet Jesse seems not to show the slightest worry. His concern is only to relieve the hunger of the three sons who went to war and to check on their safety. David’s safety and life do not seem to matter much to him. In short, Jesse loved the three older sons deeply, beginning with the firstborn. The youngest, David, was of no account.
There is another passage that shows the family’s contempt and prejudice toward David. David goes to find his brothers and finally comes to the place where they face Goliath. When his eldest brother Eliab sees David arrive with food, instead of thanking him, Eliab scolds him:
“When Eliab, David’s oldest brother, heard him speaking with the men, he burned with anger at him and asked, ‘Why have you come down here? And with whom did you leave those few sheep in the wilderness? I know how conceited you are and how wicked your heart is; you came down only to watch the battle.’” (1 Samuel 17:28 NIV)
These words are full of contempt and prejudice toward the youngest brother. Rather than worry about David, they worry about the sheep left in the field. To his brothers, David is merely a boy who tends sheep—someone unfit to be on the battlefield. How must the young David have felt hearing such words?
All of these experiences are compressed into the line we read today.
“Even if my father and mother abandon me,” (Psalm 27:10 NLT)
This confession suggests that in his upbringing he did not receive sufficient emotional support or protection from his parents.
So then, how should a person who has not been loved or supported by their parents live? Should they repay hurt with hurt? They may be unwilling to see their parents because of their wounds and hurts. They may even want revenge.
What did David do later? Did he mistreat his parents or ignore them as if to repay them for their wrongs?
There is an interesting record in 1 Samuel 22. This was when David was hiding in the cave of Adullam to escape King Saul’s pursuit. His brothers and his whole household, fearing for their safety, came down to him. Even though David himself was in a dire, pursued situation, his first concern was for the safety of his aging parents. David took his parents and went to Mizpah of Moab, entrusting them to the king of Moab.
“From there David went to Mizpah in Moab and said to the king of Moab, ‘Would you let my father and mother come and stay with you until I learn what God will do for me?’ So he left them with the king of Moab, and they stayed with him as long as David was in the stronghold.” (1 Samuel 22:3–4 NIV)
Why did David go to Moab? Choosing Moab to entrust his parents was not just a matter of geography. We need to consider David’s family background.
David’s great‑grandmother Ruth was a Moabite woman. In other words, David’s family had kinship ties with Moab, so Moab could serve as a kind of refuge on his mother’s side. We can see David’s desire to keep his parents safe.
The Bible shows that even when David likely felt hurt by his parents, in a decisive moment of crisis he did not abandon them but honored them. Putting aside childhood neglect and exclusion, his act of bringing his parents to safety reveals David’s spiritual maturity.
The Scriptures do not record what later became of David’s parents, but this account clearly demonstrates that David fulfilled his duty to care for them even in his hardest times.
So how could David care for and honor parents despite the discrimination and wrongs he suffered? How can those who endured unspeakable things from their parents still approach them with forgiveness?
Was David simply a man of greater capacity? In Psalm 27:10 he confesses:
“Though my father and my mother forsake me, the LORD will receive me.” (Psalm 27:10 NIV)
David confesses that God received him. Though his parents abandoned him—ignored him, dismissed him, left him out in the fields to tend sheep—God welcomed, embraced, and received him.
“Asaph (אָסַף),” the Hebrew for “receive,” carries more than the sense of acceptance: it means to gather, to protect, to take in. In other words, God called his name and gathered him to Himself.
There is a famous poem by Kim Chun‑soo called “Flower,” beloved and remembered by many:
“Before I called his name,
he was nothing more
than a single gesture.
When I called his name,
he came to me
and became a flower.”
God’s acceptance—“the Lord will receive me”—can be read as God calling his name. When did David experience this?
It was when Samuel came with the horn of oil to Jesse’s house. David was out in the fields with the sheep, unaware. His father did not even name him among the candidates. Yet God looked beyond handsome faces and outward stature, and called David by name.
“Then the Lord said, ‘Rise and anoint him; this is the one.’” (1 Samuel 16:12b NLT)
By the world’s standards (and in his parents’ eyes) David was unqualified, but by God’s standard he was “a man after my own heart.” David stopped trying to find his worth in his parents’ regard and turned to the One who had formed and called him. Parental love can be conditional and changeable, but God’s love does not change. From that moment, David sought to live before God. He wanted to become a “flower” to God.
Looking back, those lonely days in the field — the neglect, the hard work of watching the sheep alone against wild beasts — were wounds for David. He always struggled alone to protect his sheep.
Yet, in that very place of pain and struggle, he experienced God’s presence. He experienced that God Himself was his protector who guarded him from beasts. Although his father sent him out alone to the fields, God was there with him.
Standing before Goliath, David could say:
“The Lord who rescued me from the paw of the lion and the paw of the bear will rescue me from the hand of this Philistine.” (1 Samuel 17:37 NIV)
David did not sink into the sense of rejection he had received from his parents. Instead, that lack drove him to cling more earnestly to God, and as a result he became a great man. He was no longer a child thirsty for approval from immature parents. He was already living satisfied with God’s approval.
Although David was in the fields among predators, he lived experiencing a God who helped him, a God who protected him.
In the fight with Goliath David did not go out with a sword or a spear. He took the sling he had always used in the field to drive off wild beasts. David was left in the fields, deprived of his parents’ attention. The stones he gathered for his sling would have been etched with his deep loneliness and solitude.
He would have practiced with his sling over and over while guarding the sheep in a field where no one watched… But with that seemingly insignificant sling, David brought down the giant Goliath. The time David had spent in solitude was suddenly transformed into God’s time of preparation and training.
This became David’s testimony. And David experienced the discrimination and unfair treatment from his parents melt away like snow.
Now we can understand how David brought his parents who had ostracized him from the cave of Adullam and sheltered them in Moab. It was not because of his good character, but because his heart was overflowing with God’s love. It was not because his parents apologized or asked for forgiveness. The joy and awe of meeting God covered all wounds and faults.
Beloved, many people might say they cannot honor their parents. There may be hundreds of reasons. But we can honor our parents. Not because our parents are perfect, nor because they have repented. It is because we believe God has received us unconditionally, and so even our parents’ shortcomings can be interpreted within God’s providence.
When we become spiritually abundant, our hearts become more generous. We find room to forgive, to receive, and to give. This is the mystery God bestows on us.
Alone, by ourselves, we cannot solve parent issues. No matter how much we think and try, we cannot fix twisted relationships by our own strength.
Dear friends, some of you here today may feel that the name “parent” brings more hurt than warmth. The command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may feel like a tightening chain around your throat. But remember: David walked that path too.
David did not force himself to obey his parents; he was first fully loved by God and then he was healed. Run first into God’s arms. Pour out honestly before God how deprived you were of your parents’ love. God is ready to receive you.
Do not seek your worth in people’s words. God remembered David who was forgotten by his father. The world may call you a “victim,” but God calls you “my beloved child.”
Choose victory rather than revenge. Walking with God and letting your life blossom beautifully, as David did, is the greatest filial piety and the truest revenge. When your being is made whole in God, a miracle will occur that enables you to have compassion on the parents who hurt you.
“Though my father and mother forsake me, the LORD will receive me.” (Psalm 27:10 NIV)
May this promise wipe away your tears today and become new strength for you.
시편 27:10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슬픈 어버이날을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온 가족 주일이면서 동시에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감사하며, 귀한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의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라고 하신 주님의 십계명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 말씀을 여러 번 인용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함께 기억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늘 이때가 되면 항상 부모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날에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터로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 쓸 것을 아껴 자녀들을 먹이고 교육비로 사용했던 어머니의 소박한 모습들을 기억합니다. 또한 자녀를 위해 헌신을 다한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에 빠진 아이를 살려 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아버지의 이야기, 중증 장애인 자녀와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노부부에 대한 이야기, 북에서 홀로 탈출한 뒤 남겨진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중국에서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의 이야기 등…. 어머니와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년 이날마다 부모님 사랑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날은 당연하고 기쁘고 즐거운 날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조금 뜻밖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사실 어버이날이 되면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어버이날을 기쁘게 보내지만, 뜨거운 축제 같은 이날이 때로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숨겨져 있는 이야기이자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라는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힘든 과제이자 가혹한 폭력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 나쁜 부모는 없다”라는 말이 상처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보호막이 아닌 감옥처럼 느껴지는 삶을 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삶이 이해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분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가길 원합니다.
2021년에 출간된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기록』(글항아리, 2021)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11명의 생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직접 쓴 수기 형식의 글입니다. 그중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명아’라는 이름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예쁘다는 말을 꽤 들었던 명아에게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이 시작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후인 아직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이 가시지 않은 때였습니다. 명아는 반복되는 성폭력을 당하며 공황장애, 정체성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를 겪으며 살아갑니다. 가해자인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이 받았던 성폭력의 역사를 종이에 씁니다. 가해자인 아버지가 이미 사망했음에도 그는 아버지에 대한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합니다. 하지만 친족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판결을 얻어 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자 명아는 자기 스스로 직접 판결문을 씁니다. 친부의 친권 즉시 박탈, 그리고 총 120년 형의 선고를 담은 판결문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법적 효력이 없는 판결 문서였습니다. 그러나 명아에게는 30년간 막혀 있던 목소리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간의 억울함, 고통이 세상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버이날은 과연 어떤 날일까요?
2025년 8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아동학대 연차 보고서에 의하면 한 해 아동학대 사례가 24,492건으로 나타났습니다. 2만 건 이상의 아동학대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학대 행위자 중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84%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전체 학대의 82%가 가정 내에서 발생했습니다. 부모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사람들에게 어버이날은 어떤 날일까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이 이들에게는 또 다른 죄책감을 부추기는 폭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큰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여러 조그마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는데, 과거의 기억으로 부모님에 대한 약간의 원망이 일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버이날만큼은 그런 마음들을 잠시 묻어 두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도 가정의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27편에 아주 짤막하지만 뭉클한 느낌이 드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10)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단호하고 명백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시편 27편 앞부분에 저자의 이름이 새겨 있습니다. ‘다윗의 시’라는 표기입니다. 다윗의 삶이 어떠하였기에 그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다윗과 부모님과의 관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경에서 다윗의 부모님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윗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중 한 명에게 기름을 부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새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때 아버지 이새는 일곱 아들들을 사무엘 앞에 세워 놓습니다. 하지만 다윗만은 들에서 양을 치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이새가 엘리압을 먼저 앞세웁니다. 그는 사무엘이 언뜻 보기에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를 거절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이후에 이새는 아비나답을 불러서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또 삼마로 지나가게 하였지만,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머지 아들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삼상 16:10~11)
사무엘이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라고 묻기 전까지 이새는 다윗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는 다윗이 가족의 중요한 결정 상황에서 배제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다윗이 아버지의 마음에 그리 희망적인 아들이 아니었음을 암시합니다.
17장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 군대에는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막기 위해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새의 아들 중에는 장자 엘리압, 둘째 아비나답, 셋째 삼마가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40여 일간이나 지속되고 있는 전쟁 중에 이새는 막내 다윗에게 이해할 수 없는 심부름을 시킵니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찾아가서 형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먹을 것을 전해 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삼상 17:17~19)
이새는 전쟁통에 어린아이를 보냅니다. 오고 가는 사이에 다윗의 안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형들이 배고플 것 같으니 먹을 것을 전해 주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에게 그런 심부름을 시킬 수 있을까요? 이새의 마음에는 전쟁터에 나간 세 형제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천부장에게도 먹을 것을 갖다주어서 형들이 잘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아버지 이새에게 다윗의 안전과 생사는 그다지 관심거리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에 대한 가족들의 멸시와 편견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한 구절이 있습니다. 다윗이 마침내 골리앗과 대치하고 있는 장소로 들어가 형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큰형 엘리압은 그곳까지 먹을 것을 가져온 다윗을 칭찬하거나 그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야단칩니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삼상 17:28)
이 말 속에는 막냇동생에 대한 무시와 편견이 가득 차 있습니다. 다윗을 걱정하기보다는 도리어 들에 두고 온 양들을 걱정하는 마음뿐입니다. 형들의 마음에 다윗은 그저 들에서 양이나 치는 아이일 뿐, 전쟁터에 나올 자격도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었던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경험들이 압축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나를 버려도 (시 27:10, 새번역)
이 고백은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가정으로부터 정서적인 지지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대우받지 못한 만큼 그렇게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할까요? 남은 상처 때문에 부모를 볼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도리어 원한을 갚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올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비로소 다윗은 한 가정의 아이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행동하였을까요? 부모에게 모든 것을 갚으려 하거나 모르는 척했을까요? 사무엘상 22장에 흥미로운 기록이 나옵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추격을 받고 아둘람 굴에 피해 있을 때였습니다. 그의 형제와 온 집안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다윗에게로 내려옵니다. 이때 다윗은 자신도 쫓기는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연로한 부모의 안정을 위해 가장 먼저 걱정합니다. 다윗은 부모를 모시고 모압의 미스바로 향합니다. 그리고 모압 왕에게 자신의 부모를 의탁합니다.
다윗은 거기에서 모압의 미스바로 가서 모압 왕에게 간청하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 주실 때까지, 나의 부모가 이 곳으로 들어와 임금님과 함께 머물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자기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하였다. 다윗이 산성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다윗의 부모는 모압 왕과 함께 살았다. (삼상 22:3~4, 새번역)
왜 하필이면 다윗은 모압 왕에게 자신의 부모를 맡겼을까요? 이것은 다윗의 가정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의 증조할머니인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즉, 다윗의 집안은 모압과 혈연관계였습니다. 이새에게 모압은 일종의 외가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부모를 안전하게 모시기를 원했던 다윗은 부모를 모압으로 옮긴 것입니다. 다윗의 효성스러운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성경은 이렇듯 다윗이 부모님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법한 상황에서도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 부모를 외면하지 않고 공경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차별이나 소외를 뒤로하고 부모님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킵니다. 이러한 모습은 다윗의 성숙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다윗의 부모가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추가적인 기록이 성경에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은 다윗이 가장 힘든 시기에서도 부모를 봉양하는 책임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은 차별과 억울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부모를 모시며 공경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부모님으로부터 말 못할 일을 당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부모님에게 용서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요? 다윗은 오늘의 시편 본문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10)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접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나를 영접해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영접하다(אָסַף, 아사프)’라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받아들인다는 뜻을 넘어 ‘거두어 보호하다’, ‘불러 모으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기억하는 시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하나님께서 나를 영접해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꽃이 되도록 불러 주셨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언제 이런 경험을 했을까요? 사무엘이 기름 뿔을 들고 이새를 찾아왔을 때, 다윗은 아무것도 모른 채 들판에 있었습니다. 정작 아버지는 다윗을 후보군에 넣지도 않고 그를 부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용모가 출중하고 외견상으로 대단한 형들을 뒤로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삼상 16:12b, 새번역)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바로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 놀라는 이새와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순간 다윗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한 번도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그가 중심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주십니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자격 미달’로 통하였던 다윗이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내 마음에 합한 자’가 됩니다.
그 순간 다윗은 지금까지 부모의 눈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던 모든 노력을 멈춥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그 가치를 찾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눈이 맞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후로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 꽃이 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상처로 남은 시간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다윗이 부모와 형제들의 무관심 속에서 외롭게 양을 치던 시간은 큰 상처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들판에서 양들을 맹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윗은 늘 홀로 힘겨운 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험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고 계심을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아주 아름답게 노래한 시가 있습니다.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2)
아버지에게 대우도 받지 못하고 들에서 양들이나 돌보던 억울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도리어 그 자리가 놀라운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하나님이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신다.” 그는 어렵고 척박한 현실 속에서 도리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들판에 어린아이 다윗을 홀로 내보냈지만, 하나님은 그 들판에서 다윗과 함께하셨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는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삼상 17:37)
다윗은 부모로부터 받은 ‘거절감’에 함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미성숙한 부모의 인정에 목마른 어린아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정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다윗은 칼과 창을 들고 나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늘 들판에서 맹수를 쫓기 위해 사용했던 물맷돌을 들고 나갑니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들판에서 양 떼나 돌보고 있었던 다윗입니다. 날마다 그가 던졌던 물맷돌은 어쩌면 고독과 외로움이 담긴 돌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홀로 짐승들과 싸우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삶이었습니다. 아무도 돌아보아 주지 않는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느라 혼자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물맷돌 던지기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찮게 보이던 물맷돌로 다윗은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그 순간 다윗은 그가 고독하게 보냈던 모든 순간이 단번에 하나님의 은혜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광야와 같았던 시간이 바로 오늘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자기를 훈련하시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간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부모로부터 받아 온 차별과 불평등한 대우가 눈 녹듯 녹아드는 경험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자신을 소외시켰던 부모를 아둘람 굴에서 정성껏 모시고 모압 땅까지 피신시켰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성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 잔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쳤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다윗에게 용서를 구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이 모든 상처와 허물을 메우고도 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기가 너무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수백 가지가 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를 공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혹은 부모님들이 회개하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조건 없이 ‘영접’하여 주셨기 때문에 부모의 부족함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풍성해지면 용서할 수 있는 공간과 받아들이고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비이고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부모라는 이름이 따뜻함보다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이 쇠사슬같이 느껴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도 그와 같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다윗은 부모에게 순종하기 위해 억지로 애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먼저 충분히 사랑받아서 그 상처를 치유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치를 사람에게서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피해자라 부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 부르십니다. 복수가 아닌 승리를 선택합시다.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존재가 온전해질 때, 비로소 상처를 준 부모를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10)
이 약속이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 주고 새로운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받지 못했다 말하는 이에게” (시27:10)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2) 찬송가 579, 299장을 부릅니다.
(3)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4) 본문을 읽고 나눕니다.
(5)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6)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마칩니다.
<생각하기>
1.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과 섭섭하거나 상처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설교의 요약>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러나 이날이 모든 사람에게 기쁜 날은 아닙니다. 부모로부터 지독히도 사랑받지 못한 자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27편 10절에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다윗은 아버지 이새가 들판에서 양을 치도록 혼자 남겨둔 아이였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들고 이새의 집을 찾아왔을 때도 아버지는 다윗을 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전쟁터에 심부름을 보내면서도 다윗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형 엘리압은 먹을 것을 가져온 다윗에게 고마움 대신 멸시와 야단을 쳤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바로 이 모든 경험이 압축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다윗은 후에 원수를 갚거나 부모를 모른 척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아둘람 굴에 머물던 긴박한 상황에서도 연로한 부모를 모압까지 정성껏 피신시켰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접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영접하다(아사프, אָסַף)’는 ‘거두어 보호하다, 불러 모으다’, 즉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조차 부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 다윗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세상의 기준으로는 자격 미달이었던 다윗이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내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것입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들판에서 연습하던 물맷돌이 훗날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고독하게 보냈던 그 시간이 하나님의 준비하심의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성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이 모든 상처와 허물을 메꾸고도 남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모를 공경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조건 없이 영접하여 주셨음을 믿기에, 부모의 부족함조차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품으로 나아가십시오. 영적으로 풍성해지면 용서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고, 받아들이고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이 약속이 오늘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 주고 새로운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누기>
1. 시편 27편 10절의 말씀이 오늘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나누어 봅시다.
2. 부모와의 관계에서 풀리지 않은 상처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상처 입은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부모의 기억이 감사보다 아픔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들판에 홀로 남겨진 다윗의 이름을 불러 주셨던 주님, 세상이 우리를 외면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영접하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가치를 사람의 시선이 아닌, 우리를 ‘꽃’이라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찾게 하여 주시옵소서. 결핍의 자리가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은혜의 자리가 되게 하시고, 그 사랑의 힘으로 상처를 넘어 다윗과 같이 누군가를 품고 살려내는 넉넉한 삶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