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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마가복음 1: 9 ~ 11

김경진 목사

2019.05.12

영상 시청 (4분 16초) : 영상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40개월 미만 자녀를 둔 젊은 아버지들에게 ‘아동 학습 발달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이란 명목으로 몰래카메라를 실시했습니다. 아버지들에게 드린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이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

같은 질문을 대상만 바꿔 다시 설문지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있나요?”
“아버지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버지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인터뷰에 응한 아버지 모두는 눈물을 닦으며 흐느낍니다. 한편 또 다른 영상이 켜집니다. 설문에 임한 아버지의 아버지를 인터뷰한 영상입니다.

“생각나지요. 딸만 낳다가 아들을 가졌는데, 요번에도 딸이면 어떡할까 했는데….”
“부모로서 이렇게 무언가를 충분하게 해 줘야 하는데, 그런 것도 못 해주고 그래서 참 마음이 아픕니다.”
“아들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고….”
“크게 뭐 도와주지도 못했고 했는데 알아서 잘 컸어요.”
“계속 부족한 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죽는 순간까지…. 제가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계속 부족한 거예요.”
“너무 엄하게 했던 게 그게 제일 미안하죠. 미안해.”
“항상 내가 부족하고 항상 미안해요. 얘한테는….”
“미안하다 참.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못 가르치고….”

어쩌면 당연해서 잊고 지내는 이름,
늘 그 자리에 있기에 무심했던 이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이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이 하늘 같은 그 이름,
아버지, 그 이름의 든든함을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 우리의 아버지들은 늘 미안합니다. >

자녀들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자녀들의 핸드폰이나 지갑, 서랍 속에는 아버지 사진이 한 장도 없는데,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부모님에게 상처받은 자녀들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에게 상처받거나, 심지어 부자간에 소통이 되지 않는 가정도 있습니다.
나쁜 아버지가 있고, 부족한 아버지가 있고, 가난한 아버지가 있고, 못 배운 아버지가 있고, 감정 조절을 못 하는 아버지도 있고, 늘 술만 마시는 아버지도 있고,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떠돌아다닌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아버지는 한결같이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합니다.
좋은 아버지가 있고, 세상에서 유명한 아버지가 있고, 돈 많이 버는 아버지가 있고, 유식한 아버지도 있고, 예의 바른 아버지가 있고, 늘 기도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아버지가 있고, 가족들을 세심하게 돌봐주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버지들 역시 늘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합니다.
가끔 어떤 분들은 “외국 아버지들은 참 자상하고 좋아 보이는데,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왜 하나님이 ‘아버지’냐고 물으면서, 자신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이 좋은 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힘들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아버지들은, 그래서 더 힘들고 더 미안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보낸 아버지들, 한국전쟁의 시기를 보낸 아버지들, 전쟁 이후 절대 빈곤을 견뎌내야 했던 아버지들,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중동의 사막에서 몇 년을 보내며 가족들이 보내주는 편지를 기다리며 살았던 아버지들, 자식들을 유학 보내놓고 학비를 보내느라 자신은 정작 도시락 혼자 먹어가며 지금도 열심히 일하는 기러기 아버지들, 아이들 먹을 것을 걱정하며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추운 겨울 불을 쬐며 기다리다 일거리가 없어서 걱정하며 거리를 헤매고 있는 또 다른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은 여전히, 지금도, 자식들만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합니다.

< 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는 통로입니다. >

김현승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현실을 깊이 있게 성찰한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1913-1975)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중략)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저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음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빠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전쟁의 시대, 가난의 시대, 어둠의 시대, 혼돈의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 미안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왜 아버지들은 늘 미안할까요? 왜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아낌없이 베풀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러면서도 왜 미안하다고, 또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미안하다.”라는 말의 또 다른 말은 ‘사랑’인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마음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정말 신비로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1원 한 장도 아까워하던 사람들이 부모가 되면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지출합니다. 이 신비로운 삶의 불일치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이 또한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도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한일서 4장 7~8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7~8)

사랑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신비입니다. 사랑을 일시적인 화학작용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속성이 부모님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됩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이 없듯이, 부모가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우리는 사랑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는 통로입니다. 신비로운 사랑의 속성, 곧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물론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그 부모를 통해 사랑을 배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 불완전한 아버지여도 자식을 향한 사랑은 한결같습니다. >

오늘 본문에도 아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시고 나오실 때, 하나님은 깊은 사랑으로 아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 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우리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욱 온전하고 완전하게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금은 불완전한 육신의 아버지는,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 즉 사랑이 많으시고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 육신의 아버지는 늘 미안합니다.
2015년 4월, 유튜브에 올라온 어느 회사의 공익광고가 있습니다. “가장 지키고 싶은 꿈”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내용이었습니다.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만약 앞으로 당신이 살 날이 1년밖에 안 남았다면, 당신의 꿈을 이루는 것과 5억 원 중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학생들은 꿈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하고 창의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운동장에 벼를 심겠다.”라고 대답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또 “꿈을 이루는 것과 5억 중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서 학생들은 대부분 꿈을 이루겠다고 답했습니다. 학생들은 말합니다. “꿈은 5억 원보다는 더 큰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조건임에도, 아이들 중에는 좋은 차를 사서 타보겠다고 답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편 설문을 진행하던 중, 학생들에게 미리 녹화된 아버지의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학생들 아버지의 인터뷰였습니다. 똑같은 질문이 아버지에게도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꿈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자식들에게 못 해 준 것을 이루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아버지들은 자신의 삶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서, 한결같이 5억 원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보다는 자녀들과 식구들의 미래를 걱정한 것입니다. 5억 원을 자녀들에게 남겨 주고 싶다고,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온가족예배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이 시대의 외로운 아버지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흠도 많고, 완벽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늘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조차 마음속에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말할 용기가 없을 뿐입니다.
물론 방탕하고 규모 없이 가족들에게 아픔을 준 아버지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들이 있다면, 주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들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하고 싶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고 싶었는데, 그 깊고 오묘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나타내 보여주기를 원하셨는데,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아버지를 다시 바라봅니다. 늘 미안하다는 아버지, 늘 외로운 아버지, 그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 이제는 자녀 된 우리가 부모님께 사랑을 고백합시다. >

외국에서 일어난 실화인데, 작자를 알 수 없는 글이 있습니다. 제목은 <아버지의 낡은 일기장>입니다.

병들고 늙은 아버지를 귀찮아하던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셨지요. 항상 똑같은 말만 반복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병원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옆에 계신 아버지가 나무 위의 새를 보시더니 갑자기 물었습니다. “저게 무슨 새니?” 아들은 힐끗 보고는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저건 참새예요.” 조금 있다가 아버지는 또 물었습니다. “저게 무슨 새니?” 아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귀찮아했습니다. “말씀드렸잖아요, 참새라고요.” 조금 지나 아버지는 계속 눈길이 가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무슨 새니?” 아들은 책을 탁 내던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참새요, 참새라니까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시겠어요!” 아버지는 깜짝 놀란 듯 멍하니 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시선이 아래로 향하더니 더 이상 말이 없으셨습니다. 오래지 않아 기력이 쇠약해진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빛바랜 일기장을 발견합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일기였습니다. 아들은 무심코 펼쳐보았습니다. 일기장을 펼쳐보던 아들은 이내 손이 굳었습니다. 그 일기장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오늘 3살 된 아들과 공원에 갔다. 참새가 날아오더니 아들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았다. 아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아빠, 저게 무슨 새에요?” “아들아 저건 참새란다.” 아들은 흥미진진해 하며 스물한 번이나 물었다. 나는 한 번, 또 한 번 자상하게 대답해 줬다. “우리 아들, 천진하기도 하지! 저건 참새란다.” 아들은 밝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가족들에게 편지 쓰는 시간을 잠시 가지려고 합니다. 들어오실 때 받으신 카드가 있을 것입니다. 카드를 열어 보시면, 빈 공간이 있습니다. 오늘은 가능하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시면 좋겠습니다. 혹 그러기 어렵다면 어머니에게, 또는 다른 가족에게 편지를 쓰셔도 좋습니다. 쓰실 용기가 나지 않으시는 분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가족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도 좋겠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늘 ‘미안하다’ 말씀하셨던 그 아버지를 향해 우리의 마음을 전해 봅시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좋습니다. 아버지를 향하여 독백처럼 드리는 편지를 올려드리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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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 9 ~ 11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영상 시청 (4분 16초) : 영상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40개월 미만 자녀를 둔 젊은 아버지들에게 ‘아동 학습 발달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이란 명목으로 몰래카메라를 실시했습니다. 아버지들에게 드린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이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

같은 질문을 대상만 바꿔 다시 설문지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있나요?”
“아버지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버지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인터뷰에 응한 아버지 모두는 눈물을 닦으며 흐느낍니다. 한편 또 다른 영상이 켜집니다. 설문에 임한 아버지의 아버지를 인터뷰한 영상입니다.

“생각나지요. 딸만 낳다가 아들을 가졌는데, 요번에도 딸이면 어떡할까 했는데….”
“부모로서 이렇게 무언가를 충분하게 해 줘야 하는데, 그런 것도 못 해주고 그래서 참 마음이 아픕니다.”
“아들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고….”
“크게 뭐 도와주지도 못했고 했는데 알아서 잘 컸어요.”
“계속 부족한 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죽는 순간까지…. 제가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계속 부족한 거예요.”
“너무 엄하게 했던 게 그게 제일 미안하죠. 미안해.”
“항상 내가 부족하고 항상 미안해요. 얘한테는….”
“미안하다 참.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못 가르치고….”

어쩌면 당연해서 잊고 지내는 이름,
늘 그 자리에 있기에 무심했던 이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이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이 하늘 같은 그 이름,
아버지, 그 이름의 든든함을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 우리의 아버지들은 늘 미안합니다. >

자녀들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자녀들의 핸드폰이나 지갑, 서랍 속에는 아버지 사진이 한 장도 없는데,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부모님에게 상처받은 자녀들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에게 상처받거나, 심지어 부자간에 소통이 되지 않는 가정도 있습니다.
나쁜 아버지가 있고, 부족한 아버지가 있고, 가난한 아버지가 있고, 못 배운 아버지가 있고, 감정 조절을 못 하는 아버지도 있고, 늘 술만 마시는 아버지도 있고,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떠돌아다닌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아버지는 한결같이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합니다.
좋은 아버지가 있고, 세상에서 유명한 아버지가 있고, 돈 많이 버는 아버지가 있고, 유식한 아버지도 있고, 예의 바른 아버지가 있고, 늘 기도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아버지가 있고, 가족들을 세심하게 돌봐주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버지들 역시 늘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합니다.
가끔 어떤 분들은 “외국 아버지들은 참 자상하고 좋아 보이는데, 우리나라 아버지들은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왜 하나님이 ‘아버지’냐고 물으면서, 자신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이 좋은 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힘들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아버지들은, 그래서 더 힘들고 더 미안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보낸 아버지들, 한국전쟁의 시기를 보낸 아버지들, 전쟁 이후 절대 빈곤을 견뎌내야 했던 아버지들,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중동의 사막에서 몇 년을 보내며 가족들이 보내주는 편지를 기다리며 살았던 아버지들, 자식들을 유학 보내놓고 학비를 보내느라 자신은 정작 도시락 혼자 먹어가며 지금도 열심히 일하는 기러기 아버지들, 아이들 먹을 것을 걱정하며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추운 겨울 불을 쬐며 기다리다 일거리가 없어서 걱정하며 거리를 헤매고 있는 또 다른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은 여전히, 지금도, 자식들만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합니다.

< 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는 통로입니다. >

김현승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현실을 깊이 있게 성찰한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입니다.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1913-1975)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중략)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저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음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빠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전쟁의 시대, 가난의 시대, 어둠의 시대, 혼돈의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늘 미안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왜 아버지들은 늘 미안할까요? 왜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아낌없이 베풀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러면서도 왜 미안하다고, 또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미안하다.”라는 말의 또 다른 말은 ‘사랑’인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마음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정말 신비로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1원 한 장도 아까워하던 사람들이 부모가 되면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지출합니다. 이 신비로운 삶의 불일치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이 또한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도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한일서 4장 7~8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7~8)

사랑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신비입니다. 사랑을 일시적인 화학작용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속성이 부모님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됩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이 없듯이, 부모가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우리는 사랑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는 통로입니다. 신비로운 사랑의 속성, 곧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물론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그 부모를 통해 사랑을 배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 불완전한 아버지여도 자식을 향한 사랑은 한결같습니다. >

오늘 본문에도 아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으시고 나오실 때, 하나님은 깊은 사랑으로 아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 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우리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욱 온전하고 완전하게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금은 불완전한 육신의 아버지는,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 즉 사랑이 많으시고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 육신의 아버지는 늘 미안합니다.
2015년 4월, 유튜브에 올라온 어느 회사의 공익광고가 있습니다. “가장 지키고 싶은 꿈”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내용이었습니다.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만약 앞으로 당신이 살 날이 1년밖에 안 남았다면, 당신의 꿈을 이루는 것과 5억 원 중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학생들은 꿈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하고 창의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운동장에 벼를 심겠다.”라고 대답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또 “꿈을 이루는 것과 5억 중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서 학생들은 대부분 꿈을 이루겠다고 답했습니다. 학생들은 말합니다. “꿈은 5억 원보다는 더 큰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조건임에도, 아이들 중에는 좋은 차를 사서 타보겠다고 답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편 설문을 진행하던 중, 학생들에게 미리 녹화된 아버지의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학생들 아버지의 인터뷰였습니다. 똑같은 질문이 아버지에게도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꿈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자식들에게 못 해 준 것을 이루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아버지들은 자신의 삶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서, 한결같이 5억 원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보다는 자녀들과 식구들의 미래를 걱정한 것입니다. 5억 원을 자녀들에게 남겨 주고 싶다고, 그들의 미래를 책임져 주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온가족예배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이 시대의 외로운 아버지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흠도 많고, 완벽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늘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조차 마음속에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말할 용기가 없을 뿐입니다.
물론 방탕하고 규모 없이 가족들에게 아픔을 준 아버지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들이 있다면, 주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들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하고 싶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고 싶었는데, 그 깊고 오묘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나타내 보여주기를 원하셨는데,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아버지를 다시 바라봅니다. 늘 미안하다는 아버지, 늘 외로운 아버지, 그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 이제는 자녀 된 우리가 부모님께 사랑을 고백합시다. >

외국에서 일어난 실화인데, 작자를 알 수 없는 글이 있습니다. 제목은 <아버지의 낡은 일기장>입니다.

병들고 늙은 아버지를 귀찮아하던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셨지요. 항상 똑같은 말만 반복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병원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옆에 계신 아버지가 나무 위의 새를 보시더니 갑자기 물었습니다. “저게 무슨 새니?” 아들은 힐끗 보고는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저건 참새예요.” 조금 있다가 아버지는 또 물었습니다. “저게 무슨 새니?” 아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귀찮아했습니다. “말씀드렸잖아요, 참새라고요.” 조금 지나 아버지는 계속 눈길이 가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무슨 새니?” 아들은 책을 탁 내던지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참새요, 참새라니까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시겠어요!” 아버지는 깜짝 놀란 듯 멍하니 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시선이 아래로 향하더니 더 이상 말이 없으셨습니다. 오래지 않아 기력이 쇠약해진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빛바랜 일기장을 발견합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일기였습니다. 아들은 무심코 펼쳐보았습니다. 일기장을 펼쳐보던 아들은 이내 손이 굳었습니다. 그 일기장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오늘 3살 된 아들과 공원에 갔다. 참새가 날아오더니 아들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았다. 아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아빠, 저게 무슨 새에요?” “아들아 저건 참새란다.” 아들은 흥미진진해 하며 스물한 번이나 물었다. 나는 한 번, 또 한 번 자상하게 대답해 줬다. “우리 아들, 천진하기도 하지! 저건 참새란다.” 아들은 밝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가족들에게 편지 쓰는 시간을 잠시 가지려고 합니다. 들어오실 때 받으신 카드가 있을 것입니다. 카드를 열어 보시면, 빈 공간이 있습니다. 오늘은 가능하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시면 좋겠습니다. 혹 그러기 어렵다면 어머니에게, 또는 다른 가족에게 편지를 쓰셔도 좋습니다. 쓰실 용기가 나지 않으시는 분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가족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도 좋겠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늘 ‘미안하다’ 말씀하셨던 그 아버지를 향해 우리의 마음을 전해 봅시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좋습니다. 아버지를 향하여 독백처럼 드리는 편지를 올려드리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2019년 5월 12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88장, 57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막1:9-11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5월 12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아빠들은 자녀들에게 미안해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항상 미안해합니다. 물론 부모님들에게 상처를 받은 자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미안해합니다. “미안하다”라는 말의 다른 말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늘 이렇게 미안해합니다. 부모님들은 늘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그들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의 요약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한일서 4장 7-8절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랑은 신비입니다. 사랑을 어떤 화학작용의 일시적인 현상을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며, 사랑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속성이 바로 우리 부모님들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계시된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이 없듯이, 부모가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으므로 우리는 사랑을 모른다고 하나님 앞에서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계시의 통로입니다. 신비로운 사랑의 속성을 보여주는 통로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도 아들을 아낌없이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나오실 때, 하나님은 깊은 사랑으로 아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은 우리 육신의 아버지 보다 더욱 온전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사랑하십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이 때로 그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세상의 아버지는 늘 그래서 미안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늘 외로운 아버지를 특별히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흠도 많고,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늘 우리들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소리 내어 하지 못하는 아버지조차도 마음속에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말할 용기가 없을 분입니다.

물론 방탕하고 규모 없이 가족들에게 아픔을 준 아버지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들이 있다면, 주님께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계시하고 싶어 하셨는데, 그 깊고 오묘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나타내 보여 주시길 원하셨는데,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아버지를 다시 봅니다. 늘 미안하다는 아버지, 늘 외로운 아버지, 그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나누기

1.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눈물이 있습니까? 서로 함께 나눠보세요.

2. 오늘 나는 자녀들에게 아버지 · 어머니 · 자녀됨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내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도록 서로를 축복하며,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우리에게 가족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이 사랑 안에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족의 사랑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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