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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악한 세월, 축복의 토대

창세기 47: 7 ~ 12

김경진 목사

2020.05.10

< 어버이주일, 부모 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

(어버이주일 샌드아트 영상, 3분 19초)

험악한 세월을 이겨내신 신앙의 어버이를 기억합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8.15 광복
6.25 전쟁
한강의 기적
IMF 경제위기
이 모든 시간을 지나오신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순간들은 오직 은혜, 축복입니다.

잠시 110년 정도의 시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이후 해방을 맞이했으며, 6.25 전쟁을 경험했고, 경제 개발과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IMF 외환 위기를 겪었으며, 오늘 이 자리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마 그 시간 속에 여러분이 계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그 시간을 지나오셨을 것입니다.
6.25 전쟁 때 가족을 잃은 분도 계시고, IMF 외환 위기 때 실직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위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부모님과 선배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 왔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동시에 코로나19로 닫혔던 예배당 문이 열리고 두 번째로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이 예배와 말씀을 준비하면서 조금은 특별한 의미로 이번 주일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어버이주일에는 크게 두 관점이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격려합니다. 첫 번째 관점은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님께 감사하고, 부모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어버이주일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부모의 시각에서 자신이 정말 좋은 부모인지를 되돌아보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새롭게 결단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동안 어버이주일에 특히 첫 번째 관점, 즉 자녀의 관점에서 부모를 바라보며 사랑을 표현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부모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부모로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과연 내가 좋은 부모인가?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좋은 부모입니까? 우리는 어떤 어머니, 아버지입니까? 우리는 어떤 어른입니까? 부모로서 과연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부모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이 질문은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예.”라고 쉽게 답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이 “아니요.”라고 대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전에 제 아내가 한 학생으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 특별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문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은 절대로 이혼하지 마세요.” 뜬금없는 메시지에 잠시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제 아내가 문자를 보여주면서 “이게 무슨 뜻일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내 말에 의하면, 그 아이는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명랑하고 열심히 사는 대학 신입생이었다고 합니다. 잘 생긴 친구고, 조금만 노력하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이 상당히 많은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정서가 불안해 보여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 학생의 이야기가 무슨 뜻일까 고민하던 차에 또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교수님, 오늘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했어요.” 그제야 그 문자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은 절대로 이혼하지 마세요.” 사실 이 이야기는 교수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엄마와 아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엄마, 아빠! 이혼하지 마세요.” 그 학생이 부모님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에라도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나 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그랬을까요? 저희는 그 아이의 문자에 쉽게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 무너지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

통계를 살펴보니, 작년에 우리나라의 이혼 건수가 11만 8,000건이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부터 이혼율이 급격히 상승했는데, 1997년에 9만 건이었다면, 1997년 외환 위기와 동시에 10만 건을 훌쩍 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가파르게 치솟아 2003년에는 17만 건까지 상승했습니다. 이후 조금씩 내려가긴 했지만, 여전히 11만에서 13만 건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20년 동안 한 해 이혼 건수를 최소 수치인 11만 건이라고 하고 계산해 보면, 20년 동안 약 220만 건의 이혼 건수가 발생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혼한 남성과 여성의 수로 산정해 보면, 440만 명이 이혼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자녀가 둘씩 있었다고 가정하면, 440만 명의 아이들이 이혼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이혼뿐이겠습니까? 2019년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가 1만2천889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부모님이 자살한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부모가 자살한 경우 아이들은 불안과 우울, 공포, 분노, 수치심, 죄책감, 퇴행 등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3년부터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항상 1위를 차지한 것이 자살률이었습니다. 이 자살률도 20년으로 잡아 계산하면, 한 해 1만 명씩만 잡아도 20만 명이 20년 동안 자살했다는 수치가 나옵니다. 만약 자녀가 있는 경우를 30% 정도로만 잡아도, 6만 명의 아이들이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아이가 둘이라면 12만 명의 아이들이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경험하는 아픔을 겪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뿐이겠습니까? 가정 폭력과 폭언은 어떻습니까? 2018년 한 해 동안 112에 신고된 가정 폭력 신고 건수는 24만8,660건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4만1,905건이 구속될 만한 사건으로 검거된 경우였다고 합니다. 검거가 이루어진 횟수, 다시 말하면 4만 건을 20년으로 환산을 해 보니, 감옥에 갈 만한 폭력이 80만 건이었다는 뜻입니다. 가정 폭력 신고 건수를 1년에 20만 건으로 잡고 20년으로 계산해 보면, 400만 건의 가정 폭력 사건이 경찰에 신고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정에 4명의 가족원이 있었다고 한다면, 가정 폭력에 노출된 수가 1,600만 명에 육박한다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2018년에 벌어진 한 사건입니다. 이혼 소송 중이던 남편이 당시 별거하고 있던 아내를 처참하게 살해한 혐의로 28년 형을 구형받았습니다. 그 가정에 딸 셋이 있었는데, 그 딸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습니다. 딸들의 청원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아빠라는 사람은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를 폭행했고, 내 생일에 엄마를 끔찍하게 살해했습니다.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벌이 줄지 않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으면 아버지를 용서해 주지 말아 달라고 청원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자격 있는 부모입니까? 아이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부모가 맞습니까? 신용불량 또는 사기 등으로 자녀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최근 어느 연예인의 부모님이 1990년부터 1998년 사이에 충북 제천에서 지인 14명에게 4억 원을 빌리고 뉴질랜드로 달아났다가 잡혀 재판받게 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접하면서 ‘과연 그 연예인이 부모님의 사기와 잘못된 행위를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수십 년 만에 그 모든 내용이 밝혀진 것입니다. 자녀로서 부모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늘 사랑하고 존경하던 부모님이었는데, 그 부모님이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을 가고, 자기만 살려고 했던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자식으로서 얼마나 부끄럽고 괴로웠겠습니까?

< 부끄러운 아버지 야곱과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어쩌면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날을 보내는 부모님들도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모든 일은 우리의 불행한 역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평탄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때로는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는 것 같은 시간도 보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급속한 성장은 과도한 경쟁을 양산했고,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싸워야 했습니다. 때로는 죽고 죽이는 싸움에 들어가기도 했고, 전쟁터와 같은 자리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를 견뎌내고, 한국 전쟁에서 살아남고, 먹을 것도 구하기 어려운 극도의 가난에서 희망을 일구고, 독일에 간호사와 탄광부로 나가고, 베트남에 파병되고, 중동에 나가 돈을 벌어오면서 IMF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금융 위기도 이겨내면서, 오늘에 이른 분들이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때로는 수치를 당했고, 때로는 거짓말도 했으며, 때로는 잘못을 저질러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잘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래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우리 부모님의 마음에는 아쉬움도 있고, 애잔함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도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참으로 가난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새벽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술에 취해 정신없이 살고 있을 때, 삶에 절망하며 포기하려 할 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더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 역시 격한 경쟁과 급속히 변화되는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왔습니다. 부끄러운 뉴스가 세상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정작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도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이고, 우리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과연 부끄러움 없는 훌륭한 부모입니까? 자녀가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어쩌면 우리 자녀들이 알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과는 또 다른, 부모 자신만이 알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자녀들은 부모님의 피상적인 모습, 혹은 좋은 모습만 보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에는 또 다른 부끄러움, 괴로움, 후회, 그리고 죄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새벽기도회를 통해 야곱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야곱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반성하게 되고, 동시에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기꾼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으려고 했던 사람,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이는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그 결과, 먼 밧단아람으로 피신 가야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토록 축복을 원했지만, 그의 삶을 돌아보면 축복받은 인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야말로 험악한 세월을 보낸 인물이 야곱입니다.
속이는 자였던 자신보다 한 수 높은, 즉 더 잘 속이는 라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욕심 많은 라반과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속였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라반에게 속아 넘어갑니다. 7년의 노동으로 라헬과 결혼하길 원했던 야곱을 속인 자가 바로 라반입니다. 그렇게 야곱은 레아와 먼저 결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7년의 노동을 해서 라헬을 아내로 얻게 됩니다.
지난 주간에 살펴본 라헬과 레아, 그리고 두 여종의 이야기를 통해 야곱의 열두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질투, 시기, 사랑받지 못한 이의 한, 아이를 낳지 못한 이의 분노, 이런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야곱의 아들들이 태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거룩한 일도 아니고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그저 어디서나 벌어질 법한 인간의 추한 모습입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이라는 위대한 민족,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났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할 정도입니다. ‘좀 더 고상하게 태어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열두 지파가 이처럼 사소한 감정에 휘말리는 인물들 사이에서 빚어졌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역사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야곱은 자신의 열두 아들에게 떳떳한 인생이었을까요? 모범적인 인생이었을까요? 바르게 살아왔다고, 너희들도 나와 같은 삶을 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야곱은 자녀들 앞에서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야곱의 일생은 험악한 세월 자체였습니다. >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꼽으라면, 크게 두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밧단아람으로 도주하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벧엘 사건입니다. 홀로 걷던 그 길에서 돌을 베개 삼고 잠을 청하던 중에 하늘에서 계단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면서 야곱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가는 길을 지켜주시고, 제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셔서 평안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또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의 십의 일조를 바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을 자신의 도움으로 삼기 위해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혼할 때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고, 아이들을 낳을 때도 하나님께 물었던 기록이 없습니다. 가정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을 의뢰하거나 의지하고 기도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지혜와 생각에 의지하면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벧엘 사건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야곱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그런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6.25 전쟁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 목숨을 건져주기만 한다면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IMF 위기 속에서 “하나님, 이번만 잘 지나가게 해 주신다면, 제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습니다.”라고 계약을 맺듯이 주님께 기도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며 살아왔던 야곱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다만 그 삶의 모습이 진정한 신앙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결정적으로 변화되는 기점은 아마도 얍복나루 사건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형 에서와 400명의 군사를 앞에 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고향으로 가고는 있지만 형에게 응징당할까 봐, 자신이 일구어 놓은 가족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까 봐 두려움에 빠집니다. 재산도 먼저 보내고, 노예도 먼저 보내고, 아들도 먼저 보내고, 딸도 먼저 보내고, 아내들까지 먼저 보낸 뒤에 그는 홀로 얍복나루에 남습니다.
철저하게 모든 것이 사라지고 빈손으로 남았던 그 자리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합니다. 그를 붙잡고 놓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복을 달라고 외치고 또 외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의 허벅지를 쳐도 야곱은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축복을 얻게 됩니다.
그때 야곱이 축복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복을 누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이후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로, 불구와 같은 상태로 살았을 것입니다.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또 그가 고향에 돌아가서 경험하게 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토록 축복을 간구했지만, 이후의 삶은 가족들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형제들의 싸움이었습니다. 결국은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넘기는 일까지 벌어졌고, 요셉이 죽었다는 거짓말을 아들들에게 듣고 속아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나타나는 많은 이야기에서 야곱은 늘 속고, 힘도 없고,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남 속이길 잘하고, 재산도 잘 모으던 그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팡이에 의지해 살아가면서 과거에 저지른 잘못의 열매를 따 먹으면서 고통당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것이 노년의 야곱이었습니다.

< 부모로서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 주는 일입니다. >

오늘 본문은 야곱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을 만나고, 애굽의 바로 앞에서 인사하는 장면입니다. 바로 왕이 야곱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나이가 얼마입니까?” 그러자 야곱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세기 47:9 중)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요셉을 잃은 슬픔 속에서 20년 이상을 살았고, 속고 속이는 인생을 살면서 기근까지 만났고, 먹을 것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년의 야곱은 그저 지팡이를 짚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질 뿐입니다. 그토록 욕심스럽게 모았던 것들이 그의 노년의 기근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요셉이 없었다면, 그와 그의 아들들은 큰 민족을 이루지도 못하고, 기근 앞에 죽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야곱의 모든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히브리서 11장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브리서 11:21)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으로 신앙의 선진의 믿음을 전합니다. 그곳에 야곱에 대한 내용이 딱 한 줄 등장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야곱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지만,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에는 단 한 줄로만 요약됩니다. “그가 죽을 때 지팡이 머리에 의지해 경배하며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했다.”라는 구절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었던 일, 허물과 죄악, 실패로 가득했던 야곱이 부모로서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일이 바로 지팡이를 짚고 자기 자손에게 축복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더는 잡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고, 말년에 그가 붙잡고 있는 것은 어린 양도, 얼룩진 염소도, 어떤 재산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부인 라헬도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잡을 수 없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그저 자신을 지탱해 줄 지팡이 하나만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는 훌륭한 부모입니까? 자랑스러운 부모입니까?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어버이주일인 오늘,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과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나도 참 힘들었단다. 나도 부족했어. 나도 잘못한 게 참 많아.” 이렇게 자녀들에게 이야기하고, 양해도 구하고, 부족함도 고백하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 마음이 더럽혀지기도 했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결과를 지금 먹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너희도 나처럼 살아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속이는 자 야곱이 열국의 아버지,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딱 한 가지 이유는, 마지막에 그가 지팡이를 의지하여 자녀들을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부족하지만 자녀들을 축복할 수 있기를, “나는 부족하지만 너희는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라고 축복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Difficult Years And A Foundation of Blessing

Genesis 47: 7-12

A typical Parent’s Sunday message would focus on honoring our parents and thanking God for their love and grace. Today, however, I want to preach from a slightly different perspective. Let’s not just say “Thank you, Mom!” or “Thank you, Dad!” today, but look back on ourselves as parents.

What kind of mother or father are you to your children? Are you a good parent? Are you fit to be one? These are heavy questions. Do you deserve your children’s respect? Do you think they truly respect you? Some of you may confidently say “Yes!”, while others may not.

My wife who is a college professor once received a startling text message from a student. It said, “Professor, please don’t ever get divorced.” She didn’t know how to take this in. The sender was a bright, diligent, but at times insecure male freshman. A second message came, and we could understand where he was coming from: “My parents got a divorce today…” My wife couldn’t find the right words to reply to him. This gave me a deeper understanding of how a parent’s divorce devastates a child.

In Korea there were 118,000 cases of divorce in 2019. Divorce rates surged after the 1997 Asian Financial Crisis. The number of divorces which stood at 90,000 in 1997 surpassed 100,000 in 1998 and reached 170,000 in 2003. Approximately 2.2 million couples got divorced between 2000-2020, which means roughly 4.4 million children had to go through the agonizing experience of family breakdown.

Furthermore, among the 12,889 Koreans who committed suicide in 2019, many were parents. Children who lose a mother/father to suicide often experience instability, depression, fear, rage, sense of guilt or shame, and regression. Korea, with the highest suicide rate among OECD countries, is seeing many of its children lose their parents to suicide. After doing some math, I estimated that roughly 120,000 children were deeply wounded by a parent’s suicide in the last 20 years. It is possible that the number may be greater.

Chile abuse, both verbal and physical, is another serious issue. In 2018 alone, 248,660 cases of domestic violence were reported. Doing the math, I estimated that about 4 million suffered due to such violence in the past 20 years.

In 2018, a man brutally murdered his wife in the process of filing for divorce. One of his daughters wrote a petition on the Blue House website, “My dad has been beating my mom ever since I was young, and he did awful things to her even on my birthday. I hope the court does not reduce his sentence for feeble-mindedness.” I cannot even begin to imagine the pain this girl went through.

Dear Church, let me ask you again. Are you a good parent? Are you a respected mother/father? Many parents mistakenly believe that they are good parents, while their children think otherwise.

As we celebrate Parent’s Sunday, many of you may feel guilty and heavyhearted. This guilt is related, in part, to the dark side Korea’s modern history. Korea’s 20th century was far from stable. Sometimes, there were deep valleys, bottomless pits, and dark tunnels.

Korea’s older generation sought to survive in the fierce competition built by a rapid economic development. They had to withstand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Korean War, extreme poverty, the Asian Financial Crisis, and the Global Financial Crisis. In this process, they sometimes did shameful, unlawful things to make ends meet. They strived to give a better life to their children and achieved many things along the way. But, deep in their hearts, there is regret and sadness.

What about us Christians? We cried out to God when we were destitute, trusting in Him. We put food on the table and tried to build a better life by calling out to God each day in our dawn prayer meetings. Christians didn’t depend on alcohol when things got hard, but tried to find God’s will. Yet, in a rapidly changing, competitive world many Christians failed to remain solid. Sometimes it was Christians who made the news for unlawful actions and crimes.

These days, Korea is receiving worldwide attention for its exemplary response to Covid-19. However, it hasn’t been that long since it was seen as a transparent and credible nation. It is truly fortunate that Korea has become such a respected country. Only 150 years ago, Korea was just a quiet and remote country in the Far East. The first missionaries who arrived here wrote about how dirty, poor, lazy, and deceiving Koreans were. Who would have imagined that this land would see such amazing transformations?

I talked about many things, but let’s go back to the first question: Are we really good parents? And what about “our” parents? Perhaps we only saw their façade, that is, the side they wanted us to see. And perhaps they have a deep regret, burden, or guilt deep in their hearts.

As we meditate on Jacob’s story in the morning prayer meetings these days, I am realizing more and more that we are all like Jacob. Jacob was a liar and a fraud. From his very birth he coveted, always holding on to something. He deceived his father and brother. As a result, he had to run away. He so wanted to be blessed, but his life was far from blessed.

He meets Laban, an uncle even greedier and more conniving than himself. He is given Leah instead of Rachel on his wedding day and works 7 more years for Rachel. He not only deceived others, but also was deceived. When he hears about Joseph’s death from his other sons, you may say that Jacob paid the price for his own actions, that is, deceiving his father. Jacob even almost loses Benjamin, his beloved son.

Did Jacob live a life to be proud of in his sons’ eyes? Did he have nothing to be ashamed of? Can we say that he led a good, upright life? No. His life appears quite shameful.

What are some of the most dramatic moments of his life? First, those of deception. We can think of the scenes where Jacob is selling lentil soup to Esau, stealing his blessing, being tricked into marrying Leah, receiving news of Joseph’s death, and so on.

Yet, the most important and dramatic event of his life was the dream at Luz, or Bethel. There, as he was fleeing to Harran, he saw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a staircase to heaven in a dream. This gives him a deep reassurance that God is with him. Still, however, he continued to use God to fulfill his desires. Although Jacob vows, then and there, that the Lord will be his God and that he will give God a tenth of all his possessions, he doesn’t fully depend on the Lord in the years that follow in Paddan Aram.

The critical turning point comes at the ford of the Jabbok. When Jacob hears that his brother Esau is approaching with 400 men, he sends his family and possessions ahead of him one by one in fear. There, at the ford of the Jabbok, he wrestles with a man, God. The man had to touch the socket of Jacob’s hip for he could not overpower Jacob. Still, Jacob does not let go until the man blesses him. Jacob probably limped and walked with a staff for the rest of his life. After returning home from Paddan Aram, there was dissension among his children, and he lost Joseph.

After these life events, Jacob became weak and powerless. He is no longer the cunning, deceiving, and greedy Jacob. In his final years, he lives a painful life, paying the price for his past sins and leaning on a cane. It is pitiful to watch him send Benjamin off to Egypt when the famine gets worse.

In today’s scripture Jacob finally meets Joseph whom he thought had been dead. In this scene, Jacob meets Pharaoh who asks him how old he is. This was Jacob’s reply:

“And Jacob said to Pharaoh, ‘The years of my pilgrimage are a hundred and thirty. My years have been few and difficult, and they do not equal the years of the pilgrimage of my fathers.’” (Genesis 47: 9)

Indeed, Jacob led a difficult life. He had mourned the death of his favorite son for 20 years. He deceived others, and was deceived himself. Now his family is starving, and he has to lean on a cane. All the wealth that he had accumulated with greed was all gone. All his possessions meant nothing in the face of a famine. Without Joseph whom God had prepared in advance, Jacob and his family would starve to death. He lied and deceived others all his life to get what he wanted. But God was his only hope now.

We spot something interesting in today’s scripture. In verse 7 it says that Jacob “blessed” Pharaoh: “Then Joseph brought his father Jacob in and presented him before Pharaoh. After Jacob blessed Pharaoh, […]” (Genesis 47:7) And in verse 10 it is mentioned again that Jacob blessed Pharaoh as he went out: “Then Jacob blessed Pharaoh and went out from his presence.”

The very last thing Jacob did and was able to do was to bless.

What were Jacob’s final days like? How did he die? In Genesis it says, “Some time later Joseph was told, ‘Your father is ill.’ So he took his two sons Manasseh and Ephraim along with him.” (Genesis 48:1) After the famine Jacob fell ill. The great Israelite people started in him, and he was a man blessed by God. But he was an ill man in his final days.

Then what did Jacob do in the last years of his life? He blessed his children. He blessed Manasseh, Ephraim, and his other sons. This was his last act.

Jacob lived a lame life. There was not much to look up to as a father. He was a fraud. He was far from a righteous father. The wealth passed down to his sons was tainted by deceit and trickery. Although he had many sons, they were the result of endless strife and envy between his two wives, Rachel and Leah. Jacob was a man of error, greed, and confusion.

Yet, God remembered His covenant with Abraham, Isaac, and Jacob’s forefathers and blessed Jacob who blessed his sons in turn.

Hebrews’ description of Jacob is interesting: “By faith Jacob, when he was dying, blessed each of Joseph’s sons, and worshiped as he leaned on the top of his staff.” (Hebrews 11: 21)

Hebrews 11 has been called the Faith Chapter. While Genesis gives a lengthy description of Jacob’s life, Hebrews sums him up in a verse, the above. Its assessment of Jacob: he blessed Joseph’s sons and worshipped, leaning on a staff as he was dying.

The last thing Jacob did as a father was to bless his children, leaning on a staff. He has nothing more to grasp now. He no longer desires wealth, money, or women. All he has is a staff. But it is this staff he leans on to pray and to worship God.

Dear Church, are we good parents? Can we be proud as parents? What can we offer our children? What can we give them that will make us genuinely good parents?

We may not be morally upright, and our lives may be tainted. We may be paying the price for our sins now. But even as we make excuses for our wrongful actions, we would never encourage our children to do the same.

Yet, we can be good parents. Jacob, the deceiver,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and the father of the Israelites because of this one thing: he blessed his children leaning on a staff when he was dying.

Dear Church, why don’t we pray a blessing over our children today? No parent is perfect. No parent is totally respected. Children know that, too. Although we are weak and not without sins and flaws, we can do this one thing. We can bless our children.

‘Lord, we have lived a difficult life. But, Lord, bless our children according to Your covenant with us.’

Today, as we pass down our faith to our children, I pray that our blessings, too, will be passed down—for this is the most precious thing that parents can do for their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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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7: 7 ~ 12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 어버이주일, 부모 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

(어버이주일 샌드아트 영상, 3분 19초)

험악한 세월을 이겨내신 신앙의 어버이를 기억합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8.15 광복
6.25 전쟁
한강의 기적
IMF 경제위기
이 모든 시간을 지나오신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순간들은 오직 은혜, 축복입니다.

잠시 110년 정도의 시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이후 해방을 맞이했으며, 6.25 전쟁을 경험했고, 경제 개발과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IMF 외환 위기를 겪었으며, 오늘 이 자리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마 그 시간 속에 여러분이 계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그 시간을 지나오셨을 것입니다.
6.25 전쟁 때 가족을 잃은 분도 계시고, IMF 외환 위기 때 실직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위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부모님과 선배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 왔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동시에 코로나19로 닫혔던 예배당 문이 열리고 두 번째로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이 예배와 말씀을 준비하면서 조금은 특별한 의미로 이번 주일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어버이주일에는 크게 두 관점이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격려합니다. 첫 번째 관점은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님께 감사하고, 부모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어버이주일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부모의 시각에서 자신이 정말 좋은 부모인지를 되돌아보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새롭게 결단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동안 어버이주일에 특히 첫 번째 관점, 즉 자녀의 관점에서 부모를 바라보며 사랑을 표현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부모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부모로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과연 내가 좋은 부모인가?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좋은 부모입니까? 우리는 어떤 어머니, 아버지입니까? 우리는 어떤 어른입니까? 부모로서 과연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부모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이 질문은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예.”라고 쉽게 답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이 “아니요.”라고 대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전에 제 아내가 한 학생으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 특별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문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은 절대로 이혼하지 마세요.” 뜬금없는 메시지에 잠시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제 아내가 문자를 보여주면서 “이게 무슨 뜻일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내 말에 의하면, 그 아이는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명랑하고 열심히 사는 대학 신입생이었다고 합니다. 잘 생긴 친구고, 조금만 노력하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이 상당히 많은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정서가 불안해 보여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 학생의 이야기가 무슨 뜻일까 고민하던 차에 또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교수님, 오늘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했어요.” 그제야 그 문자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은 절대로 이혼하지 마세요.” 사실 이 이야기는 교수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엄마와 아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엄마, 아빠! 이혼하지 마세요.” 그 학생이 부모님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에라도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나 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그랬을까요? 저희는 그 아이의 문자에 쉽게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 무너지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

통계를 살펴보니, 작년에 우리나라의 이혼 건수가 11만 8,000건이었습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부터 이혼율이 급격히 상승했는데, 1997년에 9만 건이었다면, 1997년 외환 위기와 동시에 10만 건을 훌쩍 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가파르게 치솟아 2003년에는 17만 건까지 상승했습니다. 이후 조금씩 내려가긴 했지만, 여전히 11만에서 13만 건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20년 동안 한 해 이혼 건수를 최소 수치인 11만 건이라고 하고 계산해 보면, 20년 동안 약 220만 건의 이혼 건수가 발생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혼한 남성과 여성의 수로 산정해 보면, 440만 명이 이혼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자녀가 둘씩 있었다고 가정하면, 440만 명의 아이들이 이혼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이혼뿐이겠습니까? 2019년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가 1만2천889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부모님이 자살한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부모가 자살한 경우 아이들은 불안과 우울, 공포, 분노, 수치심, 죄책감, 퇴행 등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3년부터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항상 1위를 차지한 것이 자살률이었습니다. 이 자살률도 20년으로 잡아 계산하면, 한 해 1만 명씩만 잡아도 20만 명이 20년 동안 자살했다는 수치가 나옵니다. 만약 자녀가 있는 경우를 30% 정도로만 잡아도, 6만 명의 아이들이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아이가 둘이라면 12만 명의 아이들이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경험하는 아픔을 겪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뿐이겠습니까? 가정 폭력과 폭언은 어떻습니까? 2018년 한 해 동안 112에 신고된 가정 폭력 신고 건수는 24만8,660건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4만1,905건이 구속될 만한 사건으로 검거된 경우였다고 합니다. 검거가 이루어진 횟수, 다시 말하면 4만 건을 20년으로 환산을 해 보니, 감옥에 갈 만한 폭력이 80만 건이었다는 뜻입니다. 가정 폭력 신고 건수를 1년에 20만 건으로 잡고 20년으로 계산해 보면, 400만 건의 가정 폭력 사건이 경찰에 신고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정에 4명의 가족원이 있었다고 한다면, 가정 폭력에 노출된 수가 1,600만 명에 육박한다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2018년에 벌어진 한 사건입니다. 이혼 소송 중이던 남편이 당시 별거하고 있던 아내를 처참하게 살해한 혐의로 28년 형을 구형받았습니다. 그 가정에 딸 셋이 있었는데, 그 딸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습니다. 딸들의 청원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아빠라는 사람은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를 폭행했고, 내 생일에 엄마를 끔찍하게 살해했습니다.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벌이 줄지 않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으면 아버지를 용서해 주지 말아 달라고 청원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자격 있는 부모입니까? 아이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부모가 맞습니까? 신용불량 또는 사기 등으로 자녀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최근 어느 연예인의 부모님이 1990년부터 1998년 사이에 충북 제천에서 지인 14명에게 4억 원을 빌리고 뉴질랜드로 달아났다가 잡혀 재판받게 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접하면서 ‘과연 그 연예인이 부모님의 사기와 잘못된 행위를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수십 년 만에 그 모든 내용이 밝혀진 것입니다. 자녀로서 부모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늘 사랑하고 존경하던 부모님이었는데, 그 부모님이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을 가고, 자기만 살려고 했던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자식으로서 얼마나 부끄럽고 괴로웠겠습니까?

< 부끄러운 아버지 야곱과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어쩌면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날을 보내는 부모님들도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모든 일은 우리의 불행한 역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평탄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때로는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는 것 같은 시간도 보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급속한 성장은 과도한 경쟁을 양산했고,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싸워야 했습니다. 때로는 죽고 죽이는 싸움에 들어가기도 했고, 전쟁터와 같은 자리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를 견뎌내고, 한국 전쟁에서 살아남고, 먹을 것도 구하기 어려운 극도의 가난에서 희망을 일구고, 독일에 간호사와 탄광부로 나가고, 베트남에 파병되고, 중동에 나가 돈을 벌어오면서 IMF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금융 위기도 이겨내면서, 오늘에 이른 분들이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때로는 수치를 당했고, 때로는 거짓말도 했으며, 때로는 잘못을 저질러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잘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래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우리 부모님의 마음에는 아쉬움도 있고, 애잔함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도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참으로 가난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새벽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술에 취해 정신없이 살고 있을 때, 삶에 절망하며 포기하려 할 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더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 역시 격한 경쟁과 급속히 변화되는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왔습니다. 부끄러운 뉴스가 세상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정작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들도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이고, 우리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과연 부끄러움 없는 훌륭한 부모입니까? 자녀가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어쩌면 우리 자녀들이 알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과는 또 다른, 부모 자신만이 알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자녀들은 부모님의 피상적인 모습, 혹은 좋은 모습만 보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에는 또 다른 부끄러움, 괴로움, 후회, 그리고 죄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새벽기도회를 통해 야곱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야곱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반성하게 되고, 동시에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기꾼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으려고 했던 사람,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이는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그 결과, 먼 밧단아람으로 피신 가야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토록 축복을 원했지만, 그의 삶을 돌아보면 축복받은 인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야말로 험악한 세월을 보낸 인물이 야곱입니다.
속이는 자였던 자신보다 한 수 높은, 즉 더 잘 속이는 라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욕심 많은 라반과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속였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라반에게 속아 넘어갑니다. 7년의 노동으로 라헬과 결혼하길 원했던 야곱을 속인 자가 바로 라반입니다. 그렇게 야곱은 레아와 먼저 결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7년의 노동을 해서 라헬을 아내로 얻게 됩니다.
지난 주간에 살펴본 라헬과 레아, 그리고 두 여종의 이야기를 통해 야곱의 열두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질투, 시기, 사랑받지 못한 이의 한, 아이를 낳지 못한 이의 분노, 이런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야곱의 아들들이 태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거룩한 일도 아니고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그저 어디서나 벌어질 법한 인간의 추한 모습입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이라는 위대한 민족,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났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할 정도입니다. ‘좀 더 고상하게 태어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열두 지파가 이처럼 사소한 감정에 휘말리는 인물들 사이에서 빚어졌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역사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야곱은 자신의 열두 아들에게 떳떳한 인생이었을까요? 모범적인 인생이었을까요? 바르게 살아왔다고, 너희들도 나와 같은 삶을 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야곱은 자녀들 앞에서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야곱의 일생은 험악한 세월 자체였습니다. >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꼽으라면, 크게 두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밧단아람으로 도주하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벧엘 사건입니다. 홀로 걷던 그 길에서 돌을 베개 삼고 잠을 청하던 중에 하늘에서 계단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면서 야곱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가는 길을 지켜주시고, 제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셔서 평안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또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의 십의 일조를 바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을 자신의 도움으로 삼기 위해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혼할 때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고, 아이들을 낳을 때도 하나님께 물었던 기록이 없습니다. 가정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을 의뢰하거나 의지하고 기도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지혜와 생각에 의지하면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벧엘 사건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야곱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그런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6.25 전쟁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 목숨을 건져주기만 한다면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IMF 위기 속에서 “하나님, 이번만 잘 지나가게 해 주신다면, 제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습니다.”라고 계약을 맺듯이 주님께 기도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며 살아왔던 야곱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다만 그 삶의 모습이 진정한 신앙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결정적으로 변화되는 기점은 아마도 얍복나루 사건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형 에서와 400명의 군사를 앞에 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고향으로 가고는 있지만 형에게 응징당할까 봐, 자신이 일구어 놓은 가족들이 모두 사라지게 될까 봐 두려움에 빠집니다. 재산도 먼저 보내고, 노예도 먼저 보내고, 아들도 먼저 보내고, 딸도 먼저 보내고, 아내들까지 먼저 보낸 뒤에 그는 홀로 얍복나루에 남습니다.
철저하게 모든 것이 사라지고 빈손으로 남았던 그 자리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합니다. 그를 붙잡고 놓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복을 달라고 외치고 또 외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의 허벅지를 쳐도 야곱은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축복을 얻게 됩니다.
그때 야곱이 축복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복을 누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이후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로, 불구와 같은 상태로 살았을 것입니다.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또 그가 고향에 돌아가서 경험하게 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토록 축복을 간구했지만, 이후의 삶은 가족들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형제들의 싸움이었습니다. 결국은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넘기는 일까지 벌어졌고, 요셉이 죽었다는 거짓말을 아들들에게 듣고 속아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나타나는 많은 이야기에서 야곱은 늘 속고, 힘도 없고,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남 속이길 잘하고, 재산도 잘 모으던 그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팡이에 의지해 살아가면서 과거에 저지른 잘못의 열매를 따 먹으면서 고통당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것이 노년의 야곱이었습니다.

< 부모로서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 주는 일입니다. >

오늘 본문은 야곱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을 만나고, 애굽의 바로 앞에서 인사하는 장면입니다. 바로 왕이 야곱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나이가 얼마입니까?” 그러자 야곱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세기 47:9 중)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요셉을 잃은 슬픔 속에서 20년 이상을 살았고, 속고 속이는 인생을 살면서 기근까지 만났고, 먹을 것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년의 야곱은 그저 지팡이를 짚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질 뿐입니다. 그토록 욕심스럽게 모았던 것들이 그의 노년의 기근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요셉이 없었다면, 그와 그의 아들들은 큰 민족을 이루지도 못하고, 기근 앞에 죽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야곱의 모든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히브리서 11장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브리서 11:21)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으로 신앙의 선진의 믿음을 전합니다. 그곳에 야곱에 대한 내용이 딱 한 줄 등장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야곱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지만,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에는 단 한 줄로만 요약됩니다. “그가 죽을 때 지팡이 머리에 의지해 경배하며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했다.”라는 구절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었던 일, 허물과 죄악, 실패로 가득했던 야곱이 부모로서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일이 바로 지팡이를 짚고 자기 자손에게 축복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더는 잡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고, 말년에 그가 붙잡고 있는 것은 어린 양도, 얼룩진 염소도, 어떤 재산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부인 라헬도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잡을 수 없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그저 자신을 지탱해 줄 지팡이 하나만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는 훌륭한 부모입니까? 자랑스러운 부모입니까? 우리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어버이주일인 오늘,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과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나도 참 힘들었단다. 나도 부족했어. 나도 잘못한 게 참 많아.” 이렇게 자녀들에게 이야기하고, 양해도 구하고, 부족함도 고백하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 마음이 더럽혀지기도 했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결과를 지금 먹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너희도 나처럼 살아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속이는 자 야곱이 열국의 아버지,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딱 한 가지 이유는, 마지막에 그가 지팡이를 의지하여 자녀들을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부족하지만 자녀들을 축복할 수 있기를, “나는 부족하지만 너희는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라고 축복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2020년 5월 10일 주일 구역(가정)예배자료   “험악한 세월, 축복의 토대” (창 47:7-12)

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⑵ 찬송가 301장, 579장을 부릅니다. 

⑶ 구역식구(가족) 중 한 분이 기도합니다. ⑷ 창 47:7-12절을 읽고 나눕니다.

⑸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⑹ 마무리 기도와 주기도로 구역예배를 마칩니다.

           〈인터넷 참조〉 http://www.somang.net으로 접속, 5월 10일자 주일예배 말씀

 생각하기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보내면서 대부분, 아버지, 어머니의 크신 사랑을 생각하고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관점에서 어버이 주일을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어버이 주일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과거처럼 자녀로서 “어버이 은혜에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부모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설교의 요약

    우리 부모님들은 일제의 강점을 견뎌내고, 한국 전쟁에서 살아남고, 독일의 간호사로, 탄광으로, 베트남의 용병으로, 중동의 외화벌이로 살아가며, IMF의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도 극복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어머니, 아버지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부모님들은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새벽에 기도하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삶의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노력했고 더 열심히 살았습니다.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들도 그 틈바구니 속에서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나는 과연 부끄러움이 없는 훌륭한 부모인가?”

    요즘 새벽기도회에 야곱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열 두 아들에게 떳떳한 인생이었을까? 모범적인 인생이었나? 바른 길을 걸었다고, 너도 나와 같이 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야곱의 인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야곱이 죽었던 요셉을 만나고, 애굽의 바로 앞에서 인사하는 장면입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지요. “네 나이가 얼마냐?” 그러자 야곱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 47:9).

    이런 야곱에 대해 히브리서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 11:21). 야곱에 대한 평가는 그가 죽을 때에 그 지팡이 머리에 경배하고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아버지의 역할은 바로 아들을 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지팡이에 의지하여서 말입니다. 더 이상 잡을 것이 없는 상태, 이제 그가 잡고 있는 것은 부도 아니고, 재산도 아니고, 여인도 아니고,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지탱해 줄 지팡이 하나… 그러나 그 지팡이를 잡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훌륭한 부모입니까? 자랑스런 부모입니까? 우리가 자녀들에게 ‘나처럼 살아라’라고 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녀를 축복할 수 있는 부모입니다. 이 축복의 기도가 자녀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입니다. 

 나누기

 1. 나의 부모님은 어떤 부모님이셨습니까? 부모님의 어떤 면이 기억 남으십니까?

 2. 나는 자녀에게 어떤 부모입니까? 비록 내가 야곱처럼 내세 울 것이 없는 부모이고,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자녀들을 위해 축복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겠습니까?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자녀들을 향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이들에게 내가 만난 하나님을 소개하게 하시고, 그 하나님의 축복을 자녀들에게 내려주는 복된 부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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